*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5.0(2026.09.23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5.0(2026.09.23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왜 디지털문학이 낯선가?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마주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까지 언제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낯선 것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결해 이해하려 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처음 듣는 음악을 접했을 때 무심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처럼 말이다.
“어? 이거 ○○랑 비슷한데?”
그 순간 새로운 것은 그 자체로 이해되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기준 안으로 들어온다. 무엇과 비슷한지, 어디에 속하는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를 비교하면서 우리는 낯선 것을 이해한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스키마(schema)’와 ‘범주화 (categorization)’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완전히 백지의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형성한 인지적 틀을 바탕으로 이해한다. 처음 보는 대상이라도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특징을 찾고, 그것이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를 가늠하며 낯섦을 익숙한 언어로 번역한다.
문학에서도 이와 닮은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비유다. 우리는 때때로 낯설거나 추상적인 대상을 보다 구체적이고 익숙한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고 이해한다. 직유와 은유가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연결해 하나를 다른 하나에 비추어 바라보게 하듯, 우리 역시 새로운 대상을 마주할 때 이미 알고 있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기존의 것과 비교하는 일 자체는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낯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식에 가깝다.
문제는 이해를 위해 사용했던 익숙한 기준이 어느 순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까지 이어질 때 시작된다. 낯선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익숙한 것과 비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비교를 바탕으로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좋은지 나쁜지까지 판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익숙한 것은 더 이상 낯선 것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낯선 대상의 가치를 재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왜 형식적 낯섦이 가치판단으로 넘어가는가?
나 역시 디지털문학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오랫동안 익숙해온 문학의 모습에 비추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장이 화면 위에서 움직이고, 이미지와 소리가 글과 함께 등장하며, 독자가 직접 링크를 선택해 작품 속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에 다다랐다.
‘이것도 문학인가?’
돌이켜보면 이 질문은 단순히 형식이 낯설어서 생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소설과 시를 읽으며 문장을 따라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고, 작품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며, 읽은 뒤에 남는 여운을 문학의 중요한 경험으로 받아들여 왔다. 반면 디지털문학에서는 독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고, 이미지와 소리가 개입하며, 하나의 의미나 해석으로 쉽게 모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기존 문학에서 익숙하게 경험했던 방식으로 작품의 정서와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워지자, 나는 그 차이를 새로운 문학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기존 문학보다 정서적 효과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이런 방식으로도 과연 문학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고 의심했다.
그런 판단을 쉽게 내렸던 데에는 경험의 차이도 있었다. 기존 문학은 오랜 시간 읽고 배우며 그 형식과 감상 방식에 익숙해졌지만, 디지털문학은 충분히 읽고 경험해 보기도 전에 기존의 문학적 경험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미 익숙한 문학의 형식과 감상 방식에 대한 기준이 확고할수록, 그 기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은 그 자체의 방식으로 경험되기보다 기존 문학과의 비교 속에서 먼저 판단되기 쉽다.
그렇다면 내가 느낀 낯섦과 의심은 정말 디지털 문학의 가치가 부족하다는 증거였을까.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마주한 것은 문학적 가치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문학이라고 인식해 온 형식과 다른 데서 오는 ‘형식적 낯섦’이었다.
왜 이 판단이 문제인가
그 판단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기존 문학의 형식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기도 전에 평가의 범위를 제한하게 되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고정된 문자와 선형적인 읽기 방식을 ‘문학다운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링크를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고 독자의 선택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는 디지털문학은 처음부터 그 기준에서 벗어난 작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작품이 어떤 의미를 전달했는지, 어떤 감각과 경험을 만들어냈는지를 묻기보다 기존 문학의 모습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된다. 결국 평가하고 있는 것은 작품의 문학적 가치가 아니라 기존 문학과의 유사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식이 다르다는 사실과 문학적 가치가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형식의 차이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와 경험을 만들어냈는지까지 증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종이 위에 있는지, 화면 위에 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그 낯선 형식이 작품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 링크를 선택하는 행위가 작품의 의미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움직이는 문장과 이미지, 소리가 독자에게 어떤 감각과 경험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기도 전에 ‘문학답지 않다’라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외형을 기존 문학과 비교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디지털문학의 가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기존 문학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따지기보다, 먼저 그 형식이 작품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링크와 이미지, 소리, 움직이는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작품의 가치를 보장하지도, 반대로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형식이 작품의 의미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형식을 통해 어떤 의미가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문학을 충분히 경험해 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몇 편의 작품을 읽고 기존 문학과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그 낯선 형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어렵다. 직접 작품을 읽고, 링크를 선택하며 작품 속을 이동해보고, 때로는 창작자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할지 고민해 보는 경험이 쌓일 필요가 있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학생들이 직접 디지털 문학 창작에 참여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온라인을 통해 일반 독자에게 전달되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경험되는 과정 역시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작품이 창작되고, 읽히며 유통되는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처음에는 낯설게만 보였던 형식을 조금씩 그 자체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새로운 형식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문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형식의 새로움이나 낯섦 자체에 관한 판단이 아니라, 그 형식이 작품 안에서 얼마나 의미 있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우리는 디지털 문학의 가치를 작품 자체에서 판단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던 문학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의심하고 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우리가 마주한 낯섦은 문학적 가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문학의 형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형식은 무가치함의 증거가 아니다.

글쓴이 김해솔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삼면화 디포엠 <헛되지 않기를>(2025)
-비주얼 디포엠 <빛은 스며들 때 빛난다>(2025) 등 창작
-하이퍼 디포엠 <고요의 밀도> (2025) 공동 창작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I시대에도 문학은 읽히는 순간마다 완성된다 (0) | 2026.06.12 |
|---|---|
| 생동하는 새로운 서사의 시대 : 서사는 어디를 향하는가 (0) | 2026.05.12 |
| 〈웰컴 투 더 디지털 월드〉 — 세계에 개입하겠습니까? (0) | 2026.05.12 |
| <AI 시대, 창작자의 책임은 어디인가> 김의정 칼럼 (0) | 2025.12.30 |
| 서사, 기술, 그리고 인간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창작 풍경 (1) | 2025.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