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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서사

나의 첫 하이퍼서사 작품 감상기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9.1 (2025.4.30.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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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를 들으며 잠들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듣던 그 이야기들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장가였다. 시간이 흐르자, 언니를 따라 도서관에 가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종이 냄새가 묻어 있는 책들을 골라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더 자라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뒷자리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나의 서사 세계는 점점 형태를 달리하며 확장되었다. 그리고 최근,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만났다. 이름조차 낯선 ‘하이퍼서사’. <파티카>는 그 첫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익숙하게 접해온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새로운 서사였다.

 

<파티카>는 HN2 프로젝트의 2021년 하이퍼서사 작품으로, 스토리텔러 정소은 작가에 의해 창작되었다. 하이퍼서사는 ‘하이퍼링크’와 ‘유닛’(쪼개진 이야기들)으로 구성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형식이다. 독자는 정해진 순서 없이 다양한 유닛을 오가며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감상과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파티카>는 시작과 결말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작품 전체가 마치 관람차처럼 반복되고 순환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접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파티카>는 하이퍼서사의 다선형성과 비선형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파티카>가 다선형 구조를 통해 감상의 유동성과 해석의 다양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리에’는 독자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들을 만나고, 각기 다른 공간을 통과하게 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 이후의 전개는 대부분 일정한 흐름을 공유한다. 리에는 여러 개의 방을 지나며, ‘버그’를 마주하게 되고, 결국 다시 처음의 유닛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도 독자의 감상 경로와 순서는 천차만별이다. 

▲ <파티카> 구성도

 

감상이 이어지는 방식은 정해진 루트가 아닌, 독자의 선택과 시선이 만들어내는 유기적 흐름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큰 흐름은 세 가지 정도의 루트로 정리될 수 있지만, 이를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감상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루트조차도 전혀 다른 느낌과 해석을 낳는다. 예컨대 어떤 독자는 리에의 반복적인 여정을 ‘끝나지 않는 방황’으로 읽어낼 수도 있고, 또 다른 독자는 그것을 ‘<파티카>라는 웹소설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처럼 작은 선택 하나가 전혀 다른 이야기의 층위를 드러내며, 해석의 가능성은 셀 수 없이 확장된다. 더하여 <파티카>는 단지 갈래가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자가 직접 그 갈래 사이를 누비고, 조합하고, 연결해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게끔 이끈다는 점에서, 하이퍼서사의 다선형성과 비선형적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이퍼서사의 특징 중 하나는 문자언어와 이미지, 영상 등 멀티미디어를 재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파티카>는 영상 요소는 포함하지 않지만,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단순히 이미지를 삽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지를 이야기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하이퍼링크를 활용해 다른 유닛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어, 이미지 안에 텍스트를 삽입하거나, 이미지의 특정 부분을 확대하여 글을 배치하는 방식은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텍스트의 배치가 이미지의 형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이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독자에게 다채로운 해석과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멀티미디어적 연출은 하이퍼서사의 비선형적구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어(<파티카>의 예시가 아님), '하늘'이라는 단어와 그에 연관된 이미지에 땅과 관련된 유닛을 연결함으로써, 독자는 단순히 글과 이미지를 읽는 것 이상의 감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문자와 이미지, 링크가 서로 얽히며 독자가 탐색하는 방향에 따라 무수히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가 하나의 이미지나 단어를 통해 여러 유닛을 넘나들며, 그 안에 숨겨진 연결고리들을 찾는 탐색적 독서를 유도한다.

 

▲ <파티카>의 이미지 사용 예시

 

 

이러한 다선형적이고 비선형적 구조 덕분에 <파티카>는 독자에게 능동적인 탐색적 독서를 요구한다. 독자는 자신만의 순서로 유닛을 읽고, 하이퍼링크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Born’이라는 유닛을 들 수 있다. 이 단어는 발음상으로는 앞 유닛의 '다 시 한'과 이어져 ‘다시 한번’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의미상으로는 마지막 선택지인 ‘살아있다’를 선택할 때 등장하는 'Re:born'이라는 유닛과 연결되며 다시 태어나는 파티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단어도 독자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독자가 유닛의 순서를 자유롭게 바꾸며 서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직접 서사를 재구성하고 참여하는 능동적인 독서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 <파티카>의 일부 발췌

 

하지만 <파티카>는 상호작용성에 있어 다소 아쉬운 점을 남긴다. 하이퍼서사의 특징으로는 작가와 독자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이야기되기도 한다, <파티카>에서는 독자가 이야기 속 사건에 직접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 각 유닛의 댓글창은 상호작용의 수단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웹소설이나 웹툰의 댓글창과 큰 차이가 없다. 또한, 독자에게 글쓰기가 허용되지 않으며, 철저하게 작가와 독자가 분리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같은 형태는 HN2 프로젝트에서 창작된 하이퍼서사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티카>는 하이퍼서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다선형적 구성과 멀티미디어적 연출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제공한다. <파티카>는 생성형AI 사용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새로운 형태의 독서와 감상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하이퍼서사의 특성을 잘 구현한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디지털 시대의 서사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글쓴이 김의정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글쓰기, 정리하기, 양식 또는 표준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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