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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서사

[하이퍼서사 작품 소개] 김미영 작, <전당포>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0.1(2025.7.14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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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서사는 일방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독자가 직접 유닛들을 탐색하고, 그 속에서 의미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해나가는 과정이다. 마치 스스로 문을 열고, 단서를 수집하고, 연결의 실마리를 만들어나가는 방탈출처럼, 독자의 움직임은 곧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전당포>는, 도깨비처럼 수수께끼를 즐기는 독자라면 분명히 매혹당할 작품이다.

 

▲ 김보민, <개화> , 모시에 먹과 옅은 색, 테이프, 162.2×224.2cm, 2015 ⓒiwasfaraway

 

하이퍼서사 작품 <전당포>는 백반증을 지닌 주인공이 ‘귀매골’이라는 기이한 마을에 떨어져, 인간도 아닌 존재들—도깨비들과 마주하며 펼쳐지는 경계의 이야기이다. 현실과 환상, 정체성과 위장 사이를 넘나드는 이 서사에서 독자는 유닛을 탐색하며 각각의 인물과 세계의 비밀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각 유닛은 서로 다른 선택지로 이어지며, 같은 장면과 인물도 유닛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어떤 경로로 유닛을 지나쳐왔느냐에 따라 <전당포>의 진실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전당포>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다.
도박에 빠진 여자, 귀매골의 도왕, 지하여장군과 도깨비들, 그리고 야곱과 라헬, 레아의 이야기까지—고전과 민담, 신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결을 지닌 채 퍼져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하나의 서사로 맞물리기 시작한다.

 

이 연결의 실마리는 독자가 스스로 유닛을 탐색하며 찾아야 한다. 어떤 단서는 명확히 드러나지만, 어떤 단서는 유닛과 유닛 사이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 이를테면, <전당포>에서 주인공은 지하여장군이 남긴 말을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사내면 나오고, 계집이면 들어가라.”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무엇일까.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유닛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층위도 존재한다. <전당포>의 이야기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드러난 유닛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단서들이 이야기의 틈과 바깥에 숨어 있으며, 반복되는 유닛과 수수께끼는 그 자체로 이면의 해석을 요청한다. 당신이 이 겹겹의 결을 읽어낼 수 있다면, 마침내 그 진실의 가장자리에 닿게 될 것이다.

 

모든 걸 미리 말해줄 수는 없지만, 하나의 조언을 남기자면—<전당포>를 감상할 예정이라면, ‘모스부호’를 잊지 말 것. 또한, 이 작품이 여러 이야기를 엮어낸 이야기집, 전집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내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 하나의 유닛에서 시작된 여정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문은 열렸다. 당신의 이야기는 그 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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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의정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글쓰기, 정리하기, 양식 또는 표준화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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