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5.0(2026.09.23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입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막연히 기대했다. 공부하다 보면 가고 싶은 학과가 저절로 생길 거라고. 그 기대는 국어 시간에 풀렸다. 작품 속 의미와 작가의 가치관을 파헤치는 일이 재밌었다. 그 재미를 따라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에 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예상과 다른 점이 많았다. 늘 싫어했던 한국어 문법이 나와 잘 맞았다. 문학 작품은 내가 예상했던 방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현대인의 해석이나 철학보다 역사와 작가의 삶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나는 늘 혼자 생각하고 해내는 방식이 편했다. 그런데 디지털 문학 수업을 통해 달라졌다.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일이 오히려 내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변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모든 경험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나를 잘 통제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내 감정뿐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통제하려 했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나에게 실망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히려 나를 ‘늘 한결같고 변화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그 정의가 실제의 나와 맞지 않았고, 그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그사이 새로운 ‘막연한 목표’가 생겼다. 최대한 빨리 미래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나'는 이미 한참 지난 옛날의 모습이었다. 그 틀로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나를 비난했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래서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할 일들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이미 여러 번 변했고, 앞으로도 나와 내가 처한 상황은 계속 변할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제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으려고만 했다. 사실은 변해가는 나를 이해할 기준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기준을 과거 모습에서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과거의 나로만 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나뿐만 아니라 환경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나는 주인공의 마음과 행동만 따라가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도 함께 본다. 인물들을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살펴본다. 그래서 주인공이 달라지고 환경이 변하면서 결말이 처음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도, 나는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문학은 수많은 변화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바라보게 한 것이다. 문학을 통해 내가 배운 건, 결국 나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태도다.
그동안 나는 미래를 계획하려면 먼저 현재의 나부터 한결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나를 정해두어야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계속 달라진다. 내가 처한 환경도 계속 변한다. 결국 미래를 한 모습으로 정해두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여태까지 나는 하나의 미래를 정하고 예상과 다른 일들 모두 변수로 여겼다. 그 변수 때문에 계획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환경이 계속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도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계획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미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상황에 맞춰 다시 계획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정해진 답이 아니라, 계속 달라질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글쓴이 오신이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하이퍼 디포엠 <고요의 밀도> (2025) 공동 창작
-블로그 https://blog.naver.com/dhtlsdl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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