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7.0 (2024.9.30.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예전에 한 논문에서 디지털 문학의 생성 방향에 관해서 고민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사유는 현재진행형이다. 1학기 종강을 하고 장노현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를 다녀왔다. 본래의 목적은 수장고에서 전시 중인 「디지털 스토리: 이야기가 필요해」(2022.11.22.~2024.12.31.)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디지털 스토리」에서 기억에 남는 전시는 3부 가상의 세계였다. 홍범, 류호열, 임창민 등의 작가는 기존의 회화에서 벗어나 영상, 사운드, 사진을 결합한 디지털 아트를 선보였다. 방에 놓인 가구가 멈춤과 움직임을 반복하거나, 하얀 나무의 종잇조각이 파란 하늘에 흩날리는 영상과 이미지의 결합, 그리고 오랜 기와집 사이로 눈이 내리는 영상을 삽입한 작품 등 일종의 ‘움직이는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본래의 목적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디지털 아트를 보러 간 것이었지만, 사실 이번 전시에서 예상 밖의 수확은 「예측(불)가능한 세계What an Artificial World」(2024.4.26.~8.25)였다. 오늘날의 인공지능을 조망하고 기술과 인간의 공생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총 4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추수와 제이크 엘위스의 ‘생성과 비생성’이다. 디지털 아트에서 AI의 활약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22년 한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분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미드저니’로 제작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1위에 올랐을 정도로 미술계에서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을 창작의 도구로 봐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에 추수작가는 “생성 혹은 창작을 두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벌이는 ‘경쟁의’ 관계를 가시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기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하단에 쓰인 “추수, <달리의 에이미 #18>(달리 2와 협업)”이라고 적힌 작가명이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달리2’와의 ‘협업’을 명시함으로써 인공지능을 창작자로 인정한 것이다.
생성형AI를 통한 창작은 더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니다. 미술계는 이미 인정하고 있는 AI의 창작을 문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디지털 아트가 AI를 만나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듯이, 문학도 탈바꿈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문학도 비인간의 세계와 마주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분명하다. 다만, 미술계의 발걸음에 비하여 문학의 발걸음은 더디다. 비인간의 세계와 마주 또는 공생하는 문학은 어떠한 영역을 생성, 창조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 단순히 가상세계의 이야기를 삽입한 SF문학이 아니라 디지털 형식을 발판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문학의 생성과 창조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전시회 팸플릿에 적힌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 기술이 아닌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라는 문구가 아직도 기억을 맴돈다. 기술이 아닌 ‘세계’로 마주하게 될 AI, 디지털 문학도 이제 ‘인간과 비인간의 세계’ 그 ‘(불)/가능성’을 새로운 방법론에 기대어 살펴보아야 한다.
글쓴이 임미진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융합대학 교수 및 HN2프로젝트 공동 연구자
전공 분야 : 현대소설
요즘 주로 하는 일 : 디지털인문학 연구 및 '읽고-보고-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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