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8.0 (2025.1.8.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정의]
디지털 포엠은 디지털 매체 기술을 기반으로 창작, 유통, 수용되는 시적 형식이다. 문자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소리, 영상 등 멀티미디어 요소를 통합하여 새로운 시적 경험을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시각적 효과, 상호작용성, 비선형적 구조 등 전통적인 시적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 방식을 지향한다.
[역사와 배경]
디지털 포엠의 기원은 활자 인쇄술과 함께 발전한 시각적 시(visual poetry)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시각적 시는 텍스트의 배치를 통해 시각적 형태와 의미를 결합하려는 시도인데, 대표적인 예로 기욤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Calligram)'이 있다.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도 문자와 형상을 통합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세기 후반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시적 표현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전자 문학(Electronic Literature)이 주목받게 되면서 사운드 시, 구체시, 하이퍼텍스트 시, 뉴미디어 시, 비주얼 시 등 다양한 실험적 형식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팬 포엠 프로젝트, 멀티 포엠 운동, SNS 시, 미디어 포엠, 디카시 등 디지털 기술 기반의 새로운 시적 형식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디지털 시대를 대표할 새로운 시적 형식과 미학을 확립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특히 한국의 SNS 시와 디카시는 인쇄 출판을 향한 레트로한 욕망을 드러내며 디지털 시로서의 한계를 보였다. 이러한 한계 인식을 바탕으로 디지털 매체에 최적화된 시적 형식을 창안하기 위한 노력이 한남대학교의 'HN2 프로젝트' 팀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물로 "디지털 포엠 2024"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계기로 '디지털 포엠'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창작 전략]
디지털 포엠의 창작에는 디지털 기술의 특성을 활용한 네 가지 주요 전략이 있다.
첫째, 역동적 문자화 전략은 정적인 텍스트를 벗어나 움직임과 변화를 통해 시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텍스트의 위치, 크기, 색상이 변화하거나 애니메이션 효과가 가미되어 시간성과 리듬감을 구현하며, 독자는 이를 통해 시의 의미를 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둘째, 멀티미디어화 전략은 문자 텍스트와 더불어 소리, 이미지,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 요소를 결합하여 시적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 포엠은 독자의 감각을 다층적으로 자극하며, 시의 정서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셋째, 상호작용 전략은 독자의 참여를 통해 작품의 전개와 의미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의미한다. 독자는 클릭이나 터치 등의 동작을 통해 텍스트를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시구를 생성함으로써 창작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이퍼텍스트화 전략은 비선형적 연결 구조를 활용하여 독자가 작품을 다양한 경로로 탐색할 수 있도록 한다. 하이퍼링크와 같은 기술을 통해 텍스트 간의 연결이 가능해지고, 독자는 정해진 순서 없이 작품을 경험하며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창작 전략들은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시의 형식과 경험을 혁신하며, 독창적이고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요 형식]
디지털 포엠의 핵심적인 하위 장르로는 비주얼 디포엠, 삼면화 디포엠, 영상 디포엠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창작 방식과 미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먼저, 비주얼 디포엠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전통적인 시각적 시 형태를 확장한 디지털 포엠의 한 형식이다. 문자 텍스트와 이미지, 그래픽 요소를 융합하여 독자가 시를 시각적으로 감상하도록 설계되며, 애니메이션 효과나 인터랙티브한 구성 요소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형식은 단순히 읽는 경험을 넘어, 시각적 요소를 통해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유재건의 <춤>(2024), <기억 초상화>(2023) 등이 있다.
삼면화 디포엠은 세 개의 패널을 활용하여 독립적이거나 서로 연결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지털 포엠 형식이다. 이 형식은 20세기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triptych)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시적 구조를 창안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각 패널은 하나의 독립된 의미를 담을 수도 있으며, 세 패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통합된 메시지나 내러티브를 형성할 수도 있다. 이 형식의 대표작으로는, 편희주의 <온전한 미용실>(2021), 최두희의 <마지막 날 밤, 센강에 몸을 내던져 버리고 싶었다>(2022), 강가연의 <태양과 꼬리별>(2020) 등이 있다.
영상 디포엠은 동영상의 시간성과 움직임을 활용하는 디지털 포엠의 형식이다. 서사적이거나 추상적인 메시지를 시청각적 경험으로 구현함으로써, 전통적인 시적 형식과는 차별화된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형식은 영화적 기법과 멀티미디어 기술의 결합을 통해 시적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며, 시와 영상 매체의 융합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대표작으로는 박유하의 <책의 모서리가 연주하는 밤>(2024), <은박지가 우수수 쏟아지는 밤에>(2024) 등이 있다.
[의의와 전망]
디지털 포엠은 현대 시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예술, 교육, 미디어 연구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나 인터랙티브 아트 분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것으로 보인다. 멀티미디어 요소와 상호작용성을 활용해 시적 표현의 폭을 확장하고,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이러한 변화는 시의 창작, 유통, 수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전통적인 시의 경계를 허물어 다른 예술 형식과의 융합을 가능케 한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포엠은 시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디지털 시대의 문학적 혁신을 이끌고 있다.
[참고자료]
장노현(2021), “디지털 포엠의 시적 전략과 디카시의 변화 방향성”, 《한국언어문화》 75, 207-232.
장노현(2024), “디지털 포엠의 시대를 선언하다”, 《디지털 포엠 2024》(전시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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