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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포엠

비주얼 디포엠 <ou topos>: ‘정연한 세계’의 균열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3.0(2026.03.18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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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서연,  작품 크기 : 1200 x 2000px/2.65GB | 작품 형식 : PNG

 

 

 

디지털 포엠은 예술 감상의 출발점이 감각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르이다. 우리는 대체로 작품을 마주하자마자 그 의미를 파악하려 애쓴다. 작품이 지닌 메시지를 곧바로 언어로 구조화하고 논리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실제 감상 경험과 거리가 있다.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려고 서두르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을 때 예술을 난해하고, 자신과 거리가 먼 영역으로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감상은 다른 방식으로 시작된다. 작품을 마주한 순간 먼저 발생하는 것은 명확한 의미가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의미에 대한 해석은 감각을 느낀 이후에야 천천히 따라온다.

 

비주얼 디포엠은 이러한 감각의 선행을 잘 보여주는 장르이다. 시적 경험은 언어를 넘어 시각적으로 재구성되고, 이 과정에서 독자는 감각적 인상을 먼저 마주한다. 이러한 시각적 구조 속에서 독자는 다층적인 분위기와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감상자가 처음 마주하는 감각은 단지 순간적인 느낌에 그치지 않는다. 감각은 잠시 머물며 이후 해석의 방향을 형성하는 흔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감각기억’이다. 

 

감각기억은 외부 자극이 감각 기관에 도달한 직후 잠시 머무르는 감각의 잔상이다. 이 감각은 매우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언어로 인지되기 이전 단계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은 단지 순간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이해는 언제나 이미 형성된 감각 위에서 전개된다. 의미는 감각 위에서 세워진다. 이 구조는 비주얼 포엠을 감상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차서연의 비주얼 디포엠 <ou topos>는 감각이 의미보다 앞서 작동하는 구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ou topos는 유토피아(Utopia)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로, ‘없는 장소’를 뜻한다. 토머스 모어는 이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좋은 장소(eutopos)’를 결합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 사회’를 의미하는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이 제시하는 시각적 분위기는 이러한 어원적 의미와 곧바로 일치하지 않는다. 작품은 중앙에 ‘실로 정연한 세계다’라는 문장을 배치한다. 이 문장은 세 줄의 검을 하이라이트 속에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으며, 겉보기에는 질서 있고 안정감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 주변에는 ‘ERROR’라는 이미지화된 텍스트와 파란 색감이 함께 놓여 있다. ‘정연한 세계’라는 선언과 화면 속에 떠오른 ‘ERROR’ 신호가 맞부딪히면서, 질서를 말하는 문장 아래에서 어딘가 어긋난 듯한 감각이 서서히 형성된다.

 

또한, 이 문장은 하나의 거대한 눈 형상으로 제시된다. 텍스트와 이미지 요소들은 서로 결합해 눈을 이루며, 이 눈은 화면 중앙에서 감상자를 응시한다. 이 응시는 감상자를 작품 바깥의 관찰자로 남겨두지 않는다. 감상자는 눈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자신 역시 그 시선의 대상이 된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화면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이러한 응시의 감각은 한층 더 확장된다. 작품 하단에는 수많은 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눈들은 화면 속 하나의 ‘붉은 눈’에 시선을 집중한다. 다른 눈들이 모두 검은 색조를 띠는 것과 달리 붉은 눈은 강한 대비를 형성하며 화면 속에서 먼저 시각적으로 두드러진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선의 구조를 만든다. 다수의 눈이 하나의 붉은 눈을 응시하는 구도는 감시와 응시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붉은 눈은 이질적인 대상으로 놓이고, 주변의 검은 눈들은 그 존재를 둘러싸며 바라본다. 

 

작품에 배열된 텍스트 또한 이러한 시선의 긴장을 강화한다.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비선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참으로 고상한 폭력이올시다 나를 그 차가운 시선으로 안았다

 

않았다 않이하였다 아니하였다

 

앞뒤가 맞지 않음이다

 

붉은 눈이다

 

붉은 눈이 다 무너지잖아

 

그게 나쁜거야

 

회계장부의 빚을 해치워야 했다 너처럼 너처럼

 

간편하게도 치레하는 것들

 

 

이 문장들은 작품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질서와 붕괴가 맞부딪히는 장면을 만든다. ‘실로 정연한 세계다’라는 문장은 질서를 선언하지만, 그 아래 ‘앞뒤가 맞지 않음이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질서를 말하는 세계와 균열이 일어난 세계가 동시에 제시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붉은 눈’은 시각적으로 가장 강한 이질감을 일으킨다. 이 붉은 눈은 주변의 수많은 눈에 둘러싸이고, ‘붉은 눈이 다 무너지잖아’라는 문장과 연결된다. 이 장면은 특정한 존재가 다수의 시선 속에서 무너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작품 속 시선의 관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하나의 붉은 눈은 수많은 눈들의 시선 속에서 이질적인 대상으로 놓이고, 그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무너지는 존재로 제시된다. 작품은 이 과정을 서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러한 장면을 통해 감상자가 먼저 분위기를 감각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작품 속 장면은 곧바로 언어적 의미로 이어지지 않는다. 먼저 형성되는 것은 감각적인 분위기이다. 푸른 색조가 만들어내는 차가움, 오류 이미지가 주는 불안정함, 그리고 수많은 눈이 만들어내는 긴장은 작품을 마주한 순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이 그리는 세계는 질서를 말하지만 동시에 균열이 일어나는 세계이며, 다수의 시선 속에서 특정한 존재가 규정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결국, 비주얼 디포엠 <ou topos>이 제시하는 세계는 자신을 “정연하다”고 선언하지만, 실제로는 오류와 균열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이다. 작품 속 반복되는 시선과 붉은 눈의 대비는 다수의 시선 속에서 특정한 존재가 규정되고 무너지는 구조를 드러낸다. 이 세계는 처음부터 하나의 의미로 설명되지 않는다. 푸른 화면의 차가움, 오류 이미지의 불안정함, 그리고 응시하는 눈들의 긴장은 먼저 하나의 감각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 위에서 비로소 세계의 구조는 사유가 되기 시작한다.

 

이때 작품의 제목인 ou topos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단어는 ‘좋은 장소’가 아니라 ‘없는 장소’, 즉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 역시 현실의 특정한 장소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질서와 균열, 응시와 규정이 동시에 작동하는 하나의 장면을 제시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이처럼 <ou topos>는 ‘없는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현실 세계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환기한다. 감상자는 작품이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긴장감을 먼저 경험하고, 그 이후에야 그 세계의 의미를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제목이 가리키는 ‘없는 장소’는 단순한 어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사유 공간으로 작동한다.

 

 

 

 

 

 

 

 


 

 

 

글쓴이 오신이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하이퍼 디포엠 <고요의 밀도> (2025) 공동 창작

-블로그 https://blog.naver.com/dhtlsdl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