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3.0(2026.03.18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보통 문학 작품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글을 쓰는 일’을 떠올린다. 문장을 고르고, 단어를 다듬고, 문단을 연결하는 일. 대부분의 문학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표상하지 못한다. 언어는 세상에 수렴하지만 완전히 채우지는 못하여, 메우지 못하는 빈틈은 반드시 존재하게 된다.
이 빈틈은 때때로 감각의 영역에서 드러난다. 어떤 기억은 정확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형태로 떠오르고, 어떤 감정은 단어로 옮기는 순간 이미 다른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미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랑, 눈이 부시게 화창해 울렁거렸던 날씨,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반복되는 어지러움 같은 것들은 종종 문장으로 정리되기보다 몸의 감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디지털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언어만으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감각을, 화면 위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드러내려는 시도다. 글자와 이미지, 색과 배치, 화면의 밀도와 여백 같은 것들이 문장과 함께 의미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 문학은 글을 쓰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감각을 설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에 제작한 삼면화 디포엠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감각, 기억, 그리고 후회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감각의 층위로 화면 위에 배치하려 했다.
작업을 시작할 때, 문장은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떠올린 것은 하나의 장면이었다.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 사방에서 조여오는 압박감, 물속에 잠긴 듯한 감각. 이러한 감각을 어떤 문장으로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것을 어떤 형태로 보이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의 작업은 글쓰기라기보다 화면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이미지의 위치를 정하고, 글자가 어디에 놓일지를 고민하고, 화면의 밀도와 여백을 조정하는 과정이었다. 텍스트는 화면 속에서 읽히는 문장인 동시에 하나의 시각적 요소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글자의 밀도나 배열 방식에 따라 화면이 주는 감각 역시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품의 형태 역시 처음의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하나의 화면 안에서 감각을 압축해 보여주는 비주얼 디포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하면서 감각의 흐름을 하나의 장면 안에 담기보다는, 서로 다른 화면에 나누어 배치하는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작품은 하나의 화면이 아니라 세 개의 화면이 이어진 삼면화 구조로 확장되었다.
디포엠에서 구조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감각의 이동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다. 삼면화를 사용함으로써 한 화면에서는 흐릿한 기억의 이미지가 나타나고, 다른 화면에서는 문장들이 밀집하며 압박감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비교적 여백이 드러나며 감각이 다른 형태로 정리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화면들이 나란히 놓이면서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서로 다른 감각의 층위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윽고 문장을 구성할 순서가 되었지만, 그 과정도 일반적인 시와 달랐다. 일반적인 시에서는 문장과 문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의미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독자가 한 줄에서 다음 줄로 이동하며 서사를, 감정을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디포엠에서 문장은 그저 화면 위에 놓인 정보일 뿐이다. 작업을 하면서 문장을 이어 쓰기보다는, 각 문장이 화면 위에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어떤 문장은 배치에 맞게 길이를 줄이거나 늘려야 했고, 또 어떤 문장은 조각조각나 단어만 뜨문뜨문 남기게 되었다. 결국 각각의 문장들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포엠을 만들 때의 글쓰기는 문장을 연결하는 작업이라기보다, 각 문장이 하나의 감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문장 하나하나는 읽히는 동시에 하나의 시각적 요소로 기능하며, 때로는 이미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저마다의 밀도와 분위기를 지닌 채 문장들은 화면 속에 존재하고, 그 사이의 관계는 작품 안에서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대신 글과 글 사이, 글과 이미지 사이, 그리고 화면의 배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의미의 연결은 독자에게 남겨진다.
독자는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그것을 보게 된다. 화면 위에 놓인 이미지와 글자의 밀도, 색의 대비와 여백의 크기 같은 것들이 먼저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그 뒤에야 작품에 놓인 여러 조각들을 바라보며 그 사이의 관계를 스스로 구성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디포엠뿐만 아니라 디지털 문학은 완전한 서사를 전달하는 문학이라기보다, 여러 감각과 단서를 제시하고 독자가 그 사이를 이어가도록 하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독자가 어떤 부분에 먼저 시선을 두는지, 어떤 문장을 먼저 읽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디포엠의 창작 과정에서는 문장을 쓰는 일과 화면을 설계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글을 쓰는 과정이 곧 디자인의 과정이 되기도 하고, 배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문장이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문학과 시각 디자인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문학의 창작은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감각을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언어를 다시 화면 위의 감각으로 재배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디지털 포엠은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는 문학이라기보다,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하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독자가 작품을 어떻게 경험하게 될 것인가를 설계하는 일, 그것이 디지털 문학의 창작이 아닐까.
그렇기에 언어 사이에 남겨진 빈틈을 채우는 것은 결국 독자의 감각이다. 어쩌면 디지털 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언어가 미처 채우지 못한 세계를 다시 마주하게 하는 문학인지도 모른다.


글쓴이 김의정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2024년 디지털포엠 전시회(Digital Turn - 디지털 시대의 다중감각) 스태프 참여
2025년 한남대학교 창작문학상 수상 (디지털포엠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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