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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포엠

슬릿스코프, 그리고 시아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7.0 (2024.9.30.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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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SIA)는 2021년 카카오브레인의 언어 모델 KoGPT 2.0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시아'는 '시작하는 아이'의 약자로, 이 약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는 시를 쓴다는 시작(詩作)이고, 두 번째는 어떤 일을 처음 한다는 시작(始作)이다. 2022년, 시아가 세상에 나온 즉시 얻게 된 '국내 최초 시 쓰는 인공지능'이라는 타이틀은, 어떻게 보면 제 이름과 몹시 닮아 있다.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 등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했고,  1만 2천 편의 시를 읽어 작법을 익혔다. 시아의 학습 과정은 단순히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을 넘어, 언어의 구조와 시적 표현을 이해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시아는 사용자가 제목을 입력하면 약 30초 만에 시를 생성해 낸다. 이 과정에서 시아는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적 표현을 만들고, 그렇기에 시아가 생성하는 시는 인간의 작품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2022년에는 시아가 쓴 ‘작품’을 정리해 <시를 쓰는 이유>라는 시집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슬릿스코프와 시아의 이름으로 출간된 <시를 쓰는 이유>

 

해당 시집에 담긴 작품 중 <죽은 햄릿 1>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 삼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햄릿이 반복해 중얼거린다는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었다. 나는 죽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란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길 수 없도록 한다. <죽은 햄릿 1>에서 이어지는 <죽은 햄릿 2> 또한 읽는 자에게 문학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죽은 햄릿이 여전히 목숨을 구해 돌아다닌단 소문이 돌고, ‘여기 아직도 죽은 햄릿이 있다’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시의 구조는 새롭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첫 출시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시아의 작동 방식 자체는 더 이상 흥미롭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2022년은 챗GPT가 등장하기도 이전의 해. 당시에는 시아가 상당히 혁신적인 인공지능인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에 대화 가능한 인공지능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그들은 두어 마디의 명령어로도 손쉽게 시 한 편을 완성해낸다. 당장 시아보다 완성도는 떨어지되, 그들이 시아만큼 발전하는 데에는 몇 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아 프로젝트는 예술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술, 그 중에서도 특히나 시 창작을 위해 개발된 AI는 시아가 최초다. 그 특별함은 쉽게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로부터 예술을 해방'한다는 개념은 기존의 예술 창작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던지고, 창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아는 인공지능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며, 이는 완전한 과거형이 아니다. 시아는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예술가로부터 예술을 해방'한다는 개념으로 기존의 예술 창작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던지고, 창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첫 발자국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한송연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뭐든 쓰기, 뭐든 읽기, B급 콘텐츠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