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털문학 용어사전

[디지털 문학 용어 사전] '비선형 서사'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0.1(2025.7.14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하이퍼 레터 10.1 (WEB) 보러 가기

하이퍼 레터 10.1 (PDF) 보러 가기

 

[정의]

 

비선형 서사란 시간적 순서나 인과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의 구조를 구성하는 서사 형태를 말한다. 독자는 이야기의 흐름을 선형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다중 경로·반복 구조·점프·분기 등을 통해 비정형적으로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연원과 변화]

 

비선형 서사는 오래전부터 드문드문 활용되어 왔으나, 본격적인 존재를 알리고 퍼져나간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다. ‘비선형 서사’라는 단어 자체는 20세기 중반 이후 모더니스트 작가들을 해석하며 하나의 이론으로 굳혀졌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시기에 출판된 보르헤스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독자에게 무수한 가능 세계의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했고,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팔방치기>는 읽기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페이지를 순서대로 읽지 않고 앞과 뒤를 넘나들도록 유도했다.

특히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은 일반적인 소설 형식을 벗어나 백과사전 형식을 채택, 독자가 마음대로 항목을 선택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하자르 사전>에는 고정된 하나의 이야기랄 게 없으며, 이는 비선형 서사를 인쇄 매체로 표현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1994)

 

비선형 서사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픽션>의 경우,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비선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펄프 픽션>에서는 앞선 에피소드에서 죽은 사람이 이후 에피소드에 등장하기도 하고, 앞선 에피소드에서 이미 끝난 사건이 이후 에피소드에서 다시 언급되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한 인터뷰에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펼쳐져야만 하며, 예상할 수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을 위해 자신의 영화에서 선형적인 플롯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적 시도들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며 더욱 빛을 보았다. 인쇄 매체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한정적이었던 것들을 구조화하고 자동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등장한 디지털 문학 작품들은 유닛을 다양하게 활용해 고정된 서사의 개념을 해체하고, 텍스트를 보다 더 해석할 여지가 많도록 다루었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에서의 기술은 단순한 업로드, 혹은 유통의 수단이 아니라, 서사 자체에 영향을 주는 존재로 작용한다.

 

[현황과 전망]

▲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2025)

 

현대의 디지털 문학에서 비선형 서사는 독자가 서사의 전체를 유동적으로 설계하고 선택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컨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비주얼 기반 인터랙티브 서사에서 선택과 분기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챗GPT와 같은 AI 기반 스토리봇은 사용자의 질문이나 지시어에 따라 이야기 구조를 매번 새롭게 생성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비선형 서사는 미리 정해진 결말만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실시간으로 변형되는 ‘동적 서사’의 형태를 띠게 된다.

비선형 서사는 앞으로 AI 생성 기술, 데이터 기반 맞춤형 콘텐츠, 그리고 메타버스 환경과의 만남으로 더욱 다층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생성형 AI는 ‘고정된 이야기 구조’를 해체하고, 사용자와 AI가 공동으로 이야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비선형 서사는 디지털 문학의 상호작용성을 알리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문학이 단일 저자와 단일 서사에서 벗어나, 공유되고 조작되며 생성되는 열린 이야기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쓴이 한송연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뭐든 쓰기, 뭐든 읽기, B급 콘텐츠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