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2.1(2026.01.07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삶에서 한 번쯤 판타지 작품을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판타지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을 때 꾸는 ‘꿈’과 같은 존재였다. 꿈은 대체로 앞뒤의 맥락이 맞지 않고, 서사적 개연성도 희미하다. 그런데도 그 안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어떤 날에는 꿈속에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새벽에는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또 어떤 날에는 무서운 꿈에 놀라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기도 한다.
이처럼 꿈속에서 경험하는 장면들은 강렬한 감정을 남긴다. 그래서 종종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급히 노트에 적으려 하지만, 막상 펜을 드는 순간 꿈의 내용은 발이라도 달린 듯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운이 좋은 날에는 꿈속 이야기를 비교적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럴 때조차 이야기의 앞뒤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장면들이 무질서하게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그것이 충분히 재미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필자는 판타지를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즉 인간이 직접 겪을 수 없는 상황과 감정을 대신 체험하게 해주는 장르로 이해해 왔다. 판타지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통해 인간에게 해방감을 주고,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린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이번 학기를 통해 판타지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접하게 되었다. 그 계기는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전공 과목인 「문화기술과 스토리텔링」 수업이었다. 오랫동안 판타지를 현실과 가장 먼 이야기이자, 상상력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라고 여겨왔지만, 이 수업을 통해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에 가장 깊이 기대어 성립하는 장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해당 수업에서는 판타지 이론 강의와 창작 실습을 병행하며, 조별 이론 발표 두 차례와 판타지 시놉시스 창작발표 세 차례를 진행하였다. 또한 수업의 주요 교재 중 하나인 『상상력 공학 101』(강인태, 2013)을 바탕으로 조별 이론 발표와 토론을 이어가며, 필자는 판타지 창작에 앞서 요구되는 개념적 이해를 단계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판타지 설계 작업이 왜 현실에 기초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판타지와 현실이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판타지 실습 과정에서 창작한 작품 <영도>를 사례로 삼아, 이러한 논의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뒷받침하고자 한다.
이론 학습에서는 인간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스스로 꿈꿀 수 있을 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는 끝없이 상상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며, 그 무대 위에서 발현되는 상상력의 결과가 곧 판타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만 놓고 보면 판타지는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현재의 시공간에서는 체험하기 어려운 사물과 현상이 등장하는 허구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비현실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세계로서 지속성과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논리적 설계가 필수적이다. 물론 판타지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우리의 눈과 귀를 순간적으로 즐겁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이 일시적인 자극에 머무를 때, 판타지는 그 이상의 힘을 갖기 어렵다. 그 결과 많은 판타지 작품이 소수의 마니아를 위한 이야기로 남거나, 혹은 짧은 시간 동안만 소비된 채 빠르게 잊히고 만다.
따라서 좋은 소설이 그러하듯, 판타지 역시 많은 사람에게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이야기와 더불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진지한 고찰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필자 또한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진격의 거인>과 <트루먼 쇼>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이야기 속 세계와 질문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들었던 작품들로 기억된다. 이들은 자유와 선택, 그리고 주어진 현실을 의심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서사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고를 지속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판타지는 어떻게 해야 개인의 취향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삶 속에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그 답은 작품이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판타지 세계가 현실과 단절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논리와 감각을 토대로 설계될 때 비로소 독자는 그 세계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구성 전반에 대한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그 세계의 권력 구조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물들이 지닌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세계에만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어떤 조건과 맥락 속에서 그러한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문학 작품 전반에는 흔히 ‘창작한다’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반면, 판타지에는 유독 ‘설계한다’라는 말이 함께 따라붙는다. 상상력의 밀도가 높은 장르인 만큼, 판타지는 그 자체로 개연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판타지를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판타지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설계 작업이 필요할까. 이제 본격적으로 판타지 설계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그 설계 논리와 역할을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판타지와 현실이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판타지 설계의 프로세스를 상세히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여기서는 판타지가 개연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설계 논리가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위해 핵심적인 설계 요소들의 역할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야기의 무대가 될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일종의 지도 만들기에 해당하며, 우선 지도의 전체적인 규모와 공간적 특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방’ 안에 갇혀 있는 이야기와,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이야기는 공간의 크기와 개방성만으로도 전혀 다른 서사를 만들어 낸다. 판타지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가 얼마나 넓게 설정되는지, 그리고 그 공간이 개방적인지 혹은 폐쇄적인지에 따라 전개할 수 있는 서사의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이러한 공간 설계 논리는 필자가 창작한 판타지 작품<영도>(2025)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도>의 세계는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과 규칙을 지닌 네 개의 층위로 구성된 공간으로 분절되어 있다. 이는 공간을 구분하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누가 어느 공간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와 그에 따르는 통제의 정도를 독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이다. 더 나아가 <영도>를 바다 위에 고립된 인공 도시로 설정한 것 역시 공간 설계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외부 세계와 물리적으로 단절된 구조는 세계 내부의 규칙과 통제가 더욱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며, 인물들에게 ‘탈출’이나 ‘이동’이라는 선택 자체를 서사적 긴장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배치될 세력의 특성을 결정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갈등이 발생하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을 따라 전개되며, 이러한 갈등은 대개 인물이나 집단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어떤 세력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세계 안에서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결정하는 세력의 배치는 이후 전개될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유로 판타지 세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세력이라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연 지형의 조건에 따라 세력의 영역이나 특성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가상의 공간인 판타지 세계에서는 오히려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짓는 세력의 배치가 먼저 설계된다. 이후 그 세력의 성격과 관계에 맞추어 자연적 요소나 인공적 요소들이 배치될 때, 세계는 더욱 설득력 있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이러한 세력 설계 논리는 <영도>의 세계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영도>의 공간은 이야기의 무대로서 먼저 설정되었지만, 그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먼저 고려된 것은 세력의 배치였다. 이모션드리프터, 라디안, 네오에덴은 선악의 대립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과 위치를 점유하는 세력으로 설계되었으며, 이후 공간의 자연적·인공적 요소들은 이들의 성격과 관계에 맞추어 배치되었다. 그 결과 <영도>의 세계는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무대가 아니라, 인물들이 갈등을 겪고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각 세력 안에 있거나, 혹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에 살아가는 존재들이 누구인지 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판타지 세계에서 종족의 탄생과 변형은 무작위적인 상상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어떤 종은 세계의 중심에서 번성하도록 설계되기도 하고, 어떤 종은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멸종의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종족의 외형과 신체적 특징 역시 중요한 설계 요소가 된다. 눈의 개수가 달라지거나, 팔다리의 길이가 변형되는 등 비현실적인 형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 종족이 놓인 환경과 역할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것이 인간이든 직립보행을 하는 유사 인간이든, 혹은 인간과 전혀 다른 비(非)인간적 존재이든, 판타지 세계에 등장하는 종족들은 모두 설계자의 선택을 통해 세계의 질서와 메시지를 구체화한다. 이러한 종족 설계 논리는 <영도>에 등장하는 리플렉션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리플렉션은 기존의 세력이나 종족과 독립적으로 탄생한 존재라기보다,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던 시스템이 감정과 기억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설계되었다. 즉 리플렉션은 외부에서 침입한 적이 아니라, 세계 내부의 구조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리플렉션은 특정 세력에 소속되지 않은 채 경계에 위치하며, 세계가 지닌 규칙과 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리플렉션의 존재는 세계의 균열과 오류를 시각화함으로써, 종족 설계가 단순한 상상력의 확장이 아니라 세계의 작동 원리와 메시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세력과 종족이 정해진 이후, 그 안에 속한 개체들이 어떤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를 설계해야 한다. 한 인물의 역량은 타고난 개인적 자질뿐 아니라, 부나 계급, 지위, 인적 관계와 같은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역량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그가 속한 세력과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따라서 개인의 역량을 설계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미 세력과 제도를 통해 결정된 사회적 조건을 다시 반복해 설명하기보다, 판타지 장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초월적 역량에 집중해도 충분하다. 마법이나 초능력과 같은 초월적 힘은 세계의 규칙과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물의 선택과 갈등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판타지 설계의 프로세스는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판타지 세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세력의 성격을 구체화하다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여겼던 공간 설계를 다시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을 수차례 마주했다. 이후의 설정이 앞선 요소를 흔들고, 그로 인해 설계를 되돌아보는 일이 반복되면서, 판타지 설계는 고정된 단계의 나열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수정·재구성되는 가역적인 흐름임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판타지는 일종의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판타지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적 장르가 아니라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장르이다. 하나의 판타지 세계가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구조와 인물,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규칙들이 현실의 시공간과 논리에 기초해 설계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판타지는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지적 작업에 가깝다. 판타지를 설계한다는 것은 곧 현실을 더 치밀하게 관찰하고, 그 구조와 관계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글쓴이 김해솔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삼면화 디포엠 <헛되지 않기를>(2025), 비주얼 디포엠 <빛은 스며들 때 빛난다>(2025) 등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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