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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는 왜 문학의 형식을 바꿔야만 하는가> 오신이 칼럼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0.1(2025.7.14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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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한 상황이나 마주한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상황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고, 관계에 따라 태도가 바뀐다. 그런데도 정체성은 언제나 하나여야 한다는 가치관이 여전히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야 성숙한 사람이고, 모순 없이 정돈된 자아만을 진짜 자아라고 여겼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내가 이상한 걸까'라는 의심부터 들었다.

 

요즘 들어서는 그런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SNS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스타그램 속 나와 실제 삶 속 나는 제법 다르다. 웃고 있는 사진들, 정돈된 피드, 기분 좋은 순간만을 기록한 짧은 문장들은 한순간의 나일 뿐이고, 그 안에 빠진 감정들도 분명 존재한다. 처음에는 그런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점점 그 틈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질문이 생겼다. "이 중에 진짜 나는 누구지?"라는 혼란이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구성하는 맥락에 더 주목했다. 일상의 나와 인스타그램 속 나의 모습은 분명 달랐다. 하지만 그 차이를 모순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서로 다른 결로 받아들였다.

 

꾸며진 듯한 장면 속에도 나의 일부가 있었고, 오히려 그 안에서 다양한 자아를 더욱 분명히 인식했다. 많은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흩어진 나의 조각들을 제대로 마주했다.

 

우리는 하나의 자아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정리된 문장으로, 어떤 날은 흐릿한 메모처럼 존재한다. 공개 피드 속의 나, 스토리 속의 나,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메모장 속의 나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자아는 더 이상 단단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맥락 속에서 갱신되는 흐름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나는 지금,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나로 구성되고 있는가?"라고 묻는 시대다. 이런 변화는 정체성을 해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의 '허구성'을 문제 아닌 가능성으로 인지하게 된 순간이다. 억압적으로 유지되어 온 '하나의 자아상'은 오히려 우리 안의 유동성을 가두는 틀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흩어진 자아를 설명하려면 말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이야기는 중심을 정해두고, 그 중심으로 모든 경험을 수렴시키려 한다. 이야기의 전통적인 구조, 그러니까 문학이 오랫동안 취해온 서사 방식은 정해진 방향과 선형적인 흐름을 전제로 한다.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끝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더 이상 하나의 중심에 담기지 않는다. 여러 겹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구성해 간다. 정체성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뀐 만큼, 문학 또한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그 삶을 따라갈 수 없다. 문학은 언제나 시대의 감각을 담아내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제는, 변화한 자아의 모습에 따라 문학의 형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문학은 그런 필요에서 등장했다. 예를 들어 하이퍼서사는 이야기 속 이야기를 만든다. 하이퍼링크를 따라가면 완전히 다른 문장과 감정이 펼쳐지고, 파편처럼 흩어진 조각들은 읽는 이마다 다른 이야기로 엮인다.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 여러 개의 흐름이 동시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디지털 포엠도 비슷하다. 문장이 떠다니고, 이미지가 스쳐 간다. 감상하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이 열리기도 한다. 모든 요소는 읽는 사람의 방식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의미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감정처럼 흐르기도 머무르기도 한다.

 

이런 형식은 낯설지만, 지금 우리 자아의 구조와 훨씬 닮았다. 하나의 이야기로는 담기 어려운 자아를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새로운 방식이자, 문학이 변화한 시대에 응답하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형식이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힘을 가지려면, 그것을 펼쳐내는 방식이 이 시대에 알맞아야 한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이야기의 형식을 바꿔야 한다. 




 

글쓴이 오신이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글쓰기 및 분석, 영상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