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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디지털 포엠의 기원론> 오수민 칼럼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7.0 (2024.9.30.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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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행위는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었다. 동적인 걸음 속에서 시는 여전히 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인은 계속해서 시를 발표하고, 진열된 시집의 표지는 손때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읽는다는 행위를 잊은 지 오래인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래된 시 문화가 변화한다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 아예 사라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니 아이러니하다.

 

디지털 콘텐츠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문학 장르 중 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숏폼과 비슷하다. 과거에 독서는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방식에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독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기존 인쇄 출판 형태를 벗어나 SNS에서 공유된 새로운 시 장르 역시 시각적 효과에 의해 유입된다.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는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고, 팔로워는 독자가 된다. 우리가 SNS를 하는 것 자체가 창작 및 독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 걸맞은 시 창작 방식이 바로 디지털 포엠이다. 시는 이제 읽는 행위를 넘어섰다. 그동안 공감각적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많은 시도를 거듭했지만, 그 시도들은 일정 범위에서 넘어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디지털 포엠은 디지털 매체 상에서 창작, 유통, 수용되는 모든 형식의 디지털 시를 지칭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인쇄 매체에서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시적 전략을 구사하고, 움직이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하고, 소리와 영상 같은 멀티미디어만으로 시를 완성하기도 한다. 또 문자 텍스트를 쪼개고 합치고 재배치하면서 조합적, 절차적 특성을 실험하고, 게임 형식을 차용하여 유희적인 시 형식을 만들어내며, 공동 창작을 실험하기 위해 온라인상의 수용자들에게 쓰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장황한 텍스트는 더 이상 소비 욕구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 형태에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잘 변형된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으면 자연스럽게 소비 행위가 발생한다. 시각적 요소에 중점을 두는 비주얼 중심의 플랫폼을 일상처럼 이용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디지털 포엠은 시 문학 콘텐츠로 최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10, 20대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텍스트힙' 현상은 텍스트의 소비와 표현 방식에서의 특정한 경향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최근 디지털 문화와 소셜 미디어 환경에 맞추어 생겨난 독특한 사회·심리적 현상이다. 텍스트힙 현상은 텍스트보다 시각적 요소에 더 많은 중점을 두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날 메시지를 빠르고 임팩트 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짧고 간결한 텍스트, 즉 숏폼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도 포함된다.

 

'독서 놀이'에 빠진 MZ, '텍스트힙' 유행 / YTN ​[출처] 텍스트가 '힙'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반영하여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역시 다양하게 변형되고 재창조된다. 텍스트 힙, 숏폼 콘텐츠, 밈 현상은 디지털 시대의 문화적 표현 방식이자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이 현상들은 단순한 읽기나 소비를 넘어, 사용자 참여와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댓글을 달거나 콘텐츠를 재편집하여 다시 공유하는 등의 참여가 증가할 수 있다. 텍스트 소비로 자기를 표현하는 텍스트 힙현상을 소비의 형태로만 보는 게 아니라 창작의 형태로 전환할 수도 있다. SNS에 자신이 소비한 텍스트만을 업로드하는 게 아니라, 창작 텍스트를 업로드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질서를 위반하며 새로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이는 선형적인 문자를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포엠 창작 방식과도 연결된다.

 

20세기 초 윌리엄 S. 버로스와 브라이언 기신은 텍스트를 무작위로 잘라내어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했다. 라디오의 컷업 시퀀스는 소리나 텍스트, 음악의 조각들을 임의적으로 자르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내러티브나 음향을 만들어낸다. 전통적 내러티브 구조를 탈피하고 새로운 형태의 의미나 감각을 창출하는 목적이다. 디지털 포엠 역시 특징은 기존의 형식을 분해하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컷업 시퀀스 등의 요구들이 역사에 있었던 것을 보면, 디지털 포엠은 문화적으로 돌연변이처럼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SNS로 공유되는 디지털 포엠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비슷한 시집을 출간하여 시인들끼리 돌려 읽는 문화는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 시인은 그저 시를 쓰는 것에서 벗어나, 영상을 제작하고 편집하며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시 문화의 수요와 공급을 문제 삼기 전에 창작자부터 실험적 행위에 뛰어들어야 한다.

 

인쇄 출판 형태의 근대 시가 디지털 포엠으로 변형되는 시기는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찾아낸 문화 현상들을 통해 독특한 장르적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전통이라는 말로 포장한 낡은 역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 놓인 우리에게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여 시의 감동을 깊이 전달할 수 있는 진짜 디지털 포엠이 필요하다.

 

 

 


 

글쓴이 오수민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시 창작 및 합평, 디지털포엠 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