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디지털 행성으로 이주하라> 한송연 칼럼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5.0에 개재되었습니다.

하이퍼 레터 5.0 (WEB) 보러 가기

하이퍼 레터 5.0 (PDF) 보러 가기

 

 

2024. 21세기. 우리는 특정 연도와 세기를 언급할 때 그것을 단순한 숫자로만 인식하지만은 않는다. 어떤 세기는 흑사병이 돌았고 어떤 세기는 르네상스가 일어났으며 어떤 연도엔 혁명의 노래가 광장을 메우기도 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한다. 어제와 오늘의 패러다임은 동일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와중 21세기는 단연 기계의 발전과 디지털의 시대일 것이다. 쉬지 않고 페달을 구르는 기술 발전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구시대적 스탠스를 취하는 몇몇의 영역이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문학이다.

 

문학은 구술 문화의 퇴보 이후 오랜 시간 인쇄 텍스트, 즉 인쇄 가능한 텍스트의 방식으로만 그 스펙트럼을 넓혀 왔다. 아주 익숙한 형태의 소설. 혹은 익숙한 형태의 시. 문단은 시대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왔으나 그 형태는 서서히 고루해졌다. 물론 소위 실험적이라 이르는 시도들이 전무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도들은 텍스트의 한계를 넘지 못했으며, 인쇄라는 벽 안쪽에 머물며 그것을 허물어 보기는커녕 너머를 내다보지조차 않았다. 모든 시도가 조심스럽게 행해지고, 폐쇄적이기 짝이 없는 문단의 수요만을 뒤쫓아갔다.

 

혹자는 아날로그의 감성이나 전통 등을 이유로 들어 읽는 방식에만 변화를 주었을 뿐인 e-book조차 멀리하기도 한다. 팔리지 않는 서점의 종이책 위로 매일 먼지나 쌓이는 시대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하며 그 형태는 지난 시대의 방식을 따른다면 누가 문학을 읽고 즐기겠는가? 작가와 독자가 둘 다 존재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문학을 진정으로 하겠다고 말하면서, 독자를 까맣게 잊고 오로지 고상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을 대체 누가 문학이라고 불러주겠는가?

 

2022 13회 젊은작가상에서 수상한 서이제의 단편, <두개골의 안과 밖>, 최근 발표된 한국 문학들 중 형식 면에서 꽤나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는 평을 받았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흑백 사진과 시적 서술, 끝말잇기나 동어 반복과 같은 언어유희, 글자가 모여 하나의 모양을 만드는 회화적 배열 등.... 하지만 이 소설을, 특히나 이 소설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정말로 실험적이라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앞서 나열했던, 심사평에서 실험적인 시도의 예시로 언급되었던 형태들은 이미 누군가 시도했으며 그 누군가를 떠올리기 수월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새롭지 않다. 전위적이지 않다.

 

처음 인쇄기가 발명되고 인쇄 문화에 기반한 글들이 세상에 나오게 시작한 지도 벌써 6세기. 까마득한 시간이다. 그러니 그 시간을 무시할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해내기가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도들이 실패했을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난해함이다. 본래 하고자 했던 텍스트의 연출, 메시지의 전달은 독자와 거리가 멀어지고, 읽는 이로 하여금 읽기 어렵기만 하다는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누구나 새로움과 쇼크를 주는 글을 쓰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학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해결할 적절한 답변이 된다. 새로움을 찾는 자들은 타협하지 않는다.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을 보고 자신만의 길을 구축한다. 이처럼 디지털 문학의 창작 또한 강한 창작욕과 탐구 의지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 세계는 기존의 창작 방식보다 훨씬 넓고 자유롭다. 디지털 문학은 자신이 떠올린 이미지를 가장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의 예시는 아래와 같다.

 

텍스트 묘사와 함께 적절한 이미지 첨부하기, 영상이나 움직이는 파일 활용하기, 하이퍼텍스트와 같은 하이퍼링크 삽입, 다양한 유닛 활용, 사이트의 배치를 통한 다양한 형식 만들기, 애니메이션 효과 넣기 등.... 이야기했던 탐구 의지이란 단어는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된다. 하이퍼서사는 무엇을 선택하냐에 따라 창작자마다의 개별적 특징이 드러난다. 그 형식을 어떻게 구성해낼지는 오로지 창작자의 창의성과 탐구 여부에 맡겨지는 것이다. 이는 하이퍼서사 창작자들에게 맡겨진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문체 외에 자신만의 특징과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일.

 

디지털 문학은 뻔하거나 낡지 않았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내기도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디지털 문학을 근대 문학의 대체재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둘은 서로 상충하는 반대 개념보다는 이전의 것혹은 지나가려는 것’, 그리고 현재의 것혹은 오려는 것으로 이름 붙이는 편이 옳다. 동시에 디지털 문학은 전에 없던 새로움을 정의하는 개념이며, 어떤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으나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문학은 이전에 없었다는 말은 사실 200년 전 노트북이 없었고, 100년 전 인터넷이 없었으며, 50년 전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문학은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하므로.

 

우리는 이미 과도기를 지났다. 처음 스마트폰이 도입됐을 때에나 과도기라는 이름이 적절했을 것이다. 사회는 벌써 본격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들어섰으며,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놀랄 만큼 발전과 적응이 빠르다. 디지털은 이미 너무나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 이 와중 어째서 문학만이 뒤쳐져야 하는가. 왜 사람들은 디지털에 기반한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일궈내려 시도하고 관심 갖지 않는가.

 

디지털 문학은 해묵은 문화와 고루한 틀을 전부 탈피하고 우리 앞에 서 있다. 불완전한 면이 있을지언정 언제든 출발 가능하다. 때에 맞춰 이는 막 옷을 여미고 마침내 새로운 문학 패러다임 위로 도약하고자 한다. 그러니, 즐겨 보는 것이 어떨까.

 


 

글쓴이 한송연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뭐든 쓰기, 뭐든 읽기, B급 콘텐츠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