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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웹아트 앞에서 문학을 생각하다 — 장영혜중공업을 보며> 오신이 칼럼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9.1 (2025.4.30. 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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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수업을 통해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알고 있던 디지털 아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디지털 아트를 고화질 영상이나 화려한 시각 효과로만 떠올려왔는데, 장영혜중공업은 그런 인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단순한 화면 구성과 빠르게 지나가는 텍스트는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술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고, 그 가능성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장영혜중공업이 웹아트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면서, 웹아트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졌다. 이 글은 그런 질문에서 출발해, 장영혜중공업을 통해 웹아트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나름의 시선으로 사유해 보려는 글이다.

 

장영혜중공업의 작품 중 가장 흥미롭게 본 <BUST DOWN THE DOOR!> 시리즈는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BUST DOWN THE DOOR AGAIN! (WITH DRUMS)>과 <BUST DOWN THE DOOR AGAIN! (WITH STRINGS)> 두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했다. 두 작품은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각기 다른 서술자가 등장하며 배경 음악도 완전히 다르다. 같은 내용을 담은 텍스트가 각 음악에 맞춰 나열되면서 서로 다른 분위기와 감정이 만들어진다.

 

▲<BUST DOWN THE DOOR AGAIN! (WITH DRUMS)> ▲<BUST DOWN THE DOOR  AGAIN!  (WITH STRINGS)>

 

그런데 이 ‘서술자’가 누군지, 무엇을 겪고 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은 사건의 앞뒤 맥락이나 배경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아서,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 익숙한 나에게는 서사의 흐름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서술자의 감정선 역시 음악 외엔 붙잡을 만한 단서가 없어, 처음에는 몰입이 힘들다고 느꼈다. 특히 DRUMS 버전은 텍스트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따라 읽기도 벅찼다.

 

하지만 반복해서 감상하는 동안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형식과 흐름에 점차 익숙해졌고, 그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내 태도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빠른 드럼 리듬이 주는 긴장감이나 느리고 낮은 스트링 사운드가 주는 우울함에 감정을 빼앗겼고, 그 모든 느낌이 음악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감정은 단지 음악 때문만은 아니었다. 리듬에 맞춰 시간차를 두고 드러나는 텍스트들이 감정을 점차 쌓아 올렸고, 그것이 음악과 어우러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경험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이 새로운 형식이 낯설까?’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예컨대, 근대 인쇄매체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경제적으로 균일한 퀄리티를 대량 생산하는 인쇄 환경은 문장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서사 구조를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익숙한 이야기 방식이 되었다. 이처럼 매체는 예술을 구성하고 전달하는 방식까지 규정한다.

 

장영혜중공업은 ‘웹아트’라는 장르로 소개되었다. 이 명칭을 곱씹어 보니, 웹이라는 매체의 구조와 감각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다가왔다. 처음에 낯설게 느껴졌던 작품의 서사 방식 역시 그 형식이 웹이라는 환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음악과 함께 시간차를 두고 드러나는 텍스트는 그 자체로 웹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 형식이었다. 

 

이 감상을 거치며, 디지털 아트에 대한 내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디지털 아트는 단지 화려하고 고도화된 기술을 도입한 예술이 아니었다. 매체가 달라지면 예술의 형식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웹아트는 웹이라는 환경의 특성을 본질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문학 역시 이 변화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 예술이 기술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새로운 형식과 표현을 시도하듯, 문학도 이제는 기술과의 접점을 인식하고 그에 어울리는 서사 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문학 안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드물고, 낯선 시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장영혜중공업의 작업은 예술이 기술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직접 체감하게 했고, 그만큼 문학이 이 흐름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뒤따랐다.

 

디지털 시대의 예술을 마주하며, 문학을 공부하는 내가 장영혜중공업을 통해 생각해 본 것이다.

 

 


 

글쓴이 오신이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취미 및 특기: 글쓰기 및 분석, 영상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