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2.1(2026.01.07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하이퍼서사 <HYPER-LABYRINTH>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비선형성이다.<HYPER-LABYRINTH>는 각종 복선과 추리 요소를 가미해 서사적으로도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서사만이 아니라 작품이 지니는 특성을 눈여겨 본다면 더 넓은 범위에서 재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HYPER-LABYRINTH>는 두 가지 비선형성을 담아낸다. 하나는 서사의 비선형성이며 다른 하나는 시간의 비선형성이다. 이 두 가지는 몰입도를 높이고 서사를 전개하는데 핵심적인 축으로 기능한다.
비선형성은 선형성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비선형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대 개념은 선형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선형성을 매체에 적용해서 생각해보자. 선형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매체는 바로 인쇄매체다. 인쇄 매체는 소설이라는 문학을 탄생시켰는데 소설은 해당 매체의 선형성에 영향을 받아 시작과 끝이 명확한 순차성을 지니게 되었다.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처음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순차적으로 읽지,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반면 디지털매체는 비선형성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디지털서사는 비순차적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디지털서사에서 시작과 끝은 불명확하며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사에서 서사로 건너뛰듯이 서사를 읽을 수 있다.
디지털 서사와 (인쇄 매체 서사인) 소설의 차이점은 매체의 특성에서도 드러난다. 인쇄 매체는 인쇄한 이후 수정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이 특성상 소설은 수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서사가 완결되어 있다. 디지털 매체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인쇄 매체에서 글자는 종이 위에 잉크로 고정된 ‘사물’이었다. 한데 디지털 매체에서 글자는 인쇄 매체처럼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비트로 이뤄진 ‘가상의 것’이다. 지우기 몇번으로 글자를 바꾸거나 엔터키로 문단을 바꿀 수도 있는 등 수정이 매우 간편하다. 덕분에 디지털서사는 서사가 완결되지 않고 수정면에서 자유로운 특성을 가진다. 아울러 인터넷 상에서 누구나 수정할 수 있기에 개방적이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는 현재 인쇄 매체를 밀어내고 주류 매체에 등극하였다. 이는 옛날 구술 매체를 인쇄 매체가 대체하고 주류 매체가 되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매체라는 지식, 사고, 기술 등을 담는 거대한 틀이 전환된 것이다. 매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만을 결정하지 않는다. 매체는 인간의 사회 발전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며 인간의 사고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령 구텐베르크 덕분에 본격화된 인쇄 매체는 고전 텍스트를 대량 복제해 르네상스를 영속화 및 확대했으며 종교 개혁문과 성서를 대량 보급하여 종교 담론이 가속화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앞과 뒤의 맥락을 따지는 인과론적 사고를 정착시켰다. 디지털 매체 경우 정보 간의 상호연결성이 핵심이므로 인쇄 매체의 인과론적 사고관과 다른 네트워크적 사고관을 정착시킬 것이다.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인쇄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 전환되는 현상은 선형성에서 비선형성으로 전환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세계는 선형적 세계에서 탈피해 비선형적 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HYPER-LABYRINTH>는 그러한 비선형성이 서사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해당 작품의 내용은 미궁+탈출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LABYRINTH의 어원 LABYRINTHOS는 미노타우르스를 가두기 위한 미로였는데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해당 신화 속에서 주인공 격인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르스는 격퇴하고 실타래를 활용해 빠져나왔다고 하지만 <HYPER-LABYRINTH>의 주인공은 테세우스도 아닐 뿐더러 도움을 줄 실타래도 없다. 그는 평범한 인간의 몸뚱이만 지니고서 자신을 구속한 미로를 탈출하려 발버둥칠 따름이다.
서사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대부분이 전개되며 ‘나’로 지칭될 뿐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 7414번으로 칭해질 뿐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복제체다. 숫자 중간에 공백이 없다는 전제 하에 무수한 ‘나’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각종 단서에 따르면 각각의 ‘나’가 가진 기억은 완벽히 동일하다고 한다.
서사는 방들이 비치되어 이뤄진 미로를 탐색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방마다 있는 문을 통해 다른 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것은 하이퍼서사의 특성과 맞물린 전개 방식이다. 방과 문을 하이퍼서사의 전개 방식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주인공 앞에 A와 B와 C는 문이 놓여 있다. 만일 A라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A-A라는 방과 연결될 것이고 주인공은 B 방과 C 방과는 다른 서사를 경험할 것이다. 각 방마다 이러한 문이 비치되어 있고 방과 방은 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단순화한 하이퍼서사의 전개방식이다. 서사가 만일 소설과 같이 선형적이라면 경험할 수 있는 ‘문’과 ‘방’은 극히 적을 것이다. 각 문을 일일이 열고 들어가 각 방을 확인하는 방식은 소설과는 상극이다.
하이퍼서사에서 독자는 비선형성 덕분에 자신이 선택함으로써 모든 문과 모든 방을 경험할 수 있다. 선형적 서사에서 독자는 단지 보는 것에만 역할이 국한되어 있어, 작가가 짜놓은 서사의 흐름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했다. 이와 달리 하이퍼서사에서 독자는 플레이어에 가깝다. 독자는 ‘방’인 유닛에 제시되는 ‘문’인 하이퍼링크를 클릭해 능동적으로 서사를 조직해나갈 수 있다. 조직될 수 있는 서사의 숫자는 소설에 비하면 무수하며 각기 나름의 고유성을 갖는다.
독자의 선택이 중요하다 함은 독자가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직면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HYPER-LABYRINTH> 서사에서 독자의 선택은 주인공의 행동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생사를 가르는 경우가 잦다. 주인공은 문을 통해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생사의 기로에 선다. 독자의 선택에 따라 주인공은 소각당하거나, 압사당하거나, 총살당하는 등 여러 형태의 그리 좋지 못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 기억이 일부분 혹은 전부 리셋당한다. 독자가 이러한 선택지를 골랐다면 주인공은 선택지를 고르기 전의 유닛으로 회귀한다.
빈번한 주인공 사망은 비선형적 서사 덕분에 가능한 전개이다. 비선형적 서사에서 주인공의 목숨은 소설에서보다 훨씬 ‘가볍다’. 선형적 서사인 소설에서 주인공을 어떤 의로든 엔딩 전에 ‘퇴장’시킨다면 향후 전개에 지대한 악영향이 된다. 일부 소설들은 주인공이 부활했다거나 ‘사실은 안 죽었었다’라는 식으로 이를 해결하지만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반면 하이퍼서사는 이전 유닛으로 주인공은 복귀시킬 수 있으니 주인공의 사망을 ‘무를 수’ 있다.
하이퍼서사는 디지털 매체에 속하는만큼 비선형성 뿐만 아니라 다매체성이라는 특성도 지닌다. 소설의 경우 복사기의 발전 덕분에 활판 인쇄에서는 어려웠던 그림 삽입이 상대적으로 쉬워졌다고 해도 그림이 서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그림은 어디까지나 몰입을 돕는 보조적 수단에 그친다. 무엇보다 매체적 한계 때문에 음악이나 효과음 등을 사용할 수가 없다. 반면 <HYPER-LABYRINTH>에서 그림은 서사의 한 부분인 선택지로 기능한다. 나아가 매체의 특성상 음악이나 효과음 사용이 자유로워 이를 활용해 독자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고자 시도한다.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다중 시간선 비선형 제어 관리 실험”이 자신이 겪는 모든 고초의 원흉임을 깨닫는다. 실험의 정체는 “그녀의 수기”라는 유닛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언급되는데, 실험의 정체를 파헤치기 보다 탈출을 우선시한다면 주인공은 ‘CCTV’라는 유닛으로 진입하게 된다. 해당 유닛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나’와 조우하고 그들은 짧은 대화를 나누며 탈출할 방안을 모색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실험실은 완전한 폐쇄 공간이며, 무수히 중첩된 세계에서 ‘그만큼의 나’가 지금도 실험당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독자는 배경 일러스트를 통해 실험실이 우주에 위치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주인공들은 이 실험에 “한 방 먹이기”를 결심하고 그들은 실험실 설계도를 뒤진 끝에 ‘누르지 마시오’라고 쓰인 버튼을 발견한다. 자폭 버튼이다. 두 명의 ‘나’는 각자의 손을 얹고서 버튼을 누른다. 이로서 작품은 엔딩을 맞는다.
이 엔딩은 가장 비극적인 끝맺음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절대 목표는 탈출과 생존이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력을 다한 끝에 도달한 공간에서 마주한 진실은 탈출 불가였다. 주인공은 탈출이라는 목표가 좌절되자 자폭함으로써 생존이라는 목표마저 포기한다.
그런데 작품의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CCTV 유닛은 또 다른 반전을 암시한다. CCTV 유닛에는 “처음으로 돌아가기”라는 하이퍼링크가 제시되어 있다. 독자가 이것을 클릭하면 엔딩 전 유닛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 서사의 프롤로그 격인 “INTRO” 유닛으로 복귀한다. 두 유닛의 일러스트는 두 유닛이 동일한 장소임을 가리킨다. 서사는 시작 유닛과 끝 유닛이 서로 맞물린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독자는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주인공들의 자폭도 실험의 일부일 수 있다는 가설을.

다시 하이퍼서사를 읽다보면 엔딩에 다다르기까지 여러 석연찮은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의 경로 이탈을 의도한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주인공은 CCTV 유닛에 도달하기까지 어떠한 형태의 물리적 제지를 받지 않았다. 도중에 여성 연구원을 마주치기는 하지만 그녀는 주인공에게 건조한 질문을 던질 뿐 제지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빈정거리는 것이기는 했지만 주인공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주인공의 ‘자폭’은 ‘자폭’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폭 버튼은 실험의 일환으로 비치되어 있을 뿐이며 주인공은 기억이 리셋되거나 최악의 경우 존재 자체가 리셋되어 7415번 째 실험에 투입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독자가 실험의 정체를 밝히는데 집중한다면 “그녀의 수기”라는 유닛들로 진입한다. 여기서 독자는 실험의 실마리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정체에 대해서도 약간이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수기에 따르면 주인공은 “인류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역죄인”이라고 한다. 실험실 외부가 우주였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인류 대부분을 말살하거나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을 수준으로 황폐화되게 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고 인류는 우주로 피신해 주인공으로 “끝장난 내일”을 복구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복구 방법은 지속적으로 언급된 “다중 시간선 비선형 제어 관리 실험”이다. 해당 실험은 다세계 해석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설정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세계 해석을 하이퍼서사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하이퍼서사에서 “A”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순간 “A”에서 파생되는 선택지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A”를 선택했다고 해서 “B”, “C” 등 다른 선택지는 소멸하지는 것이 아니라 하이퍼서사에 여전히 존재한다. 독자는 물리적인 제약 때문에 한번에 한 선택지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세계선에는 독자가 “B” 선택지나 “C” 선택지를 고른 것이 존재한다.
작품에 언급된 실험이 다세계 해석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녀의 수기” 유닛에서 여 연구원은 “본래 한 줄로 달려가야할 시간의 선로들이 여러줄이 충돌하며 상존한다.”라고 적는다. CCTV 유닛에서 ‘나’가 무수한 세계가 중첩되어 있다, 라고 언급하는 장면 또한 있다.
‘상존’은 여러 상태가 동시에 실제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상존을 시간과 결합하면 서로 다른 능성으로 뻗어나가는 여러 시간선은 폐기되지 않았으며 물리적으로 겹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가능성이 각각의 시간선에서 실제로 실현된다는 다세계 해석의 핵심 주장과 부합한다.
둘째로 수기에는 “그에게 있을 수 없는 기억을 심는 것은 가능한가”라고 서술되어 있다. 주류는 아니지만 일부 다세계 해석에서는 평행한 우주들 사이에서 미세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서사에서 주인공 7413번은 실험 도중 ‘나’의 죽음을 체험하고 놀라 다른 선택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다른 우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나’의 기억의 현재의 세계선에 흘러들었음을 의미한다.
셋째로 가설 이름에서 다세계 해석임을 유추할 수 있다.
실험은 다중 시간선 비선형/제어 관리 실험으로 쪼개어 보아야 한다. 단일 시간선을 다루는 타임루프 영화인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주인공은 시간 회귀 능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수정’하려 한다. 해당 영화에서 과거가 바뀌면 현재의 ‘나’는 사라지거나 변한다. 반면 본 서사에서 다중 시간선은 여러 시간대가 상존함을 전제한다. 이를 제어 관리 실험이라는 단어와 연결해보자. 수정이 과거를 옳은 방향으로 고치는 것이라면 제어 관리는 수많은 시간선 중 특정 결과(이 경우 세상이 멸망하지 않은 세계)를 선별하는 것을 뜻한다.
이 3가지를 종합해서 보면 실험은 실험체에게 ‘기억’을 주입하고 각기 다른 우주에게 ‘기억’이 흘러들게 유도하여 최종적으로 ‘나’가 멸망을 일으키지 않는 시간선을 강제 분기시키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대는 비선형성의 시대인 동시에 혼돈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선형성은 탈중앙성, 비순차성, 비인과성, 복수 규칙성을 속성으로 지닌다. 현대인은 의지해야할 가치가 불명확해진 세계 속에서 서로 다른 수많은 규칙과 가치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현상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이것은 세계가 급격히 비선형성으로 이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수백 년 동안 인쇄 매체가 공고히 다져 놓은 선형적 틀 안에서 살아왔고, 비선형성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 대다수는 선형적 시대의 교육을 받았다. 인쇄 매체는 인간의 뇌에 정답과 완결성이라는 신화를 심어 놓아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사고한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는 완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쇄 매체는 인간이 중앙화를 원하도록 조장하여 하나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정답이 존재할 것이라고 인간은 무의식 중에 전제한다. 그러나 다원적인 현대 사회는 주류적인 가치관이나 주류적인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인쇄 매체는 수직적 탐구과 동일시하게 했다. 반면 현대 사회는 수직적 탐구보다는 수평적인 연결을 요구한다.
결국 현대인이 겪는 혼란은 인지적 지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지적 지체는 일시적일 것이다. 과거 인쇄 매체가 구술 매체를 밀어내고 선형적 사유의 시대를 열었을 때도 인간은 이와 유사한 진통을 겪었을 터이나 활자라는 체계에 적합한 사고관을 발달시키는데에 성공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인이 마주한 혼란 또한, 인쇄 매체에 의해 강제된 선형성에서 벗어나 디지털 매체가 선사하는 비선형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이다.
주목해야할 점은 다선형성이 사실 인간의 본능적 사고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뇌는 본래 파편화된 정보를 네트워크적으로 연결하는 연상 작용에 특화되어 있지만 인쇄 매체는 특성상 500년간 비자연적인 선형적 사고를 해야 했다. 따라서 인류는 강제된 선형적 사고 방식을 걷어내고 비선형성에 적응하는 것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사고관의 변화는 시대의 발전으로 직결되었다. 비선형적 사고관이 어떠한 사고관을 선사할지 모르는 일지만 제 2의 르네상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글쓴이: 정재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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