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4.0(2026.06.26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편집자주
생성형 AI가 시를 쓰고 소설을 창작하는 시대, 우리는 문학의 고유성은 어디에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AI와 문학, 디지털 창작의 가능성을 탐구해 온 박한라 교수는 최근 『시는 쓰이지 않는다』(2026)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우리는 그 문제의식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원고를 청탁했다. 이 글에서 박 교수는 인간의 몸에 새겨진 미세한 감각과 정동(Affect)을 문학의 출발점으로 제안하며,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1. 프롤로그: 통계학적 미문(美文)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우리는 지금 생성형 AI가 시를 쓰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대중과 평단은 연일 AI가 쏟아내는 유려한 문장에 경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것의 ‘모방성’이나 겉만 매끄러운 글을 폄하하며 안도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인간 문학의 종말을 고하며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단지 확률적 계산일 뿐이라며 냉소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양극단의 소란 속에서 우리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시 쓰기는 대체 어디에 남아 있는가?’
단언컨대, 시인의 고유성은 이제 더 이상 어휘의 화려함이나 리듬의 정교함, 혹은 익숙한 문체의 재현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이미 기계의 딥러닝 체계 안에서 완벽하게 시뮬레이션될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인간 시인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는 무엇인가. 필자는 그 가능성을 인간 신체가 겪어내는 구체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역동, 즉 ‘정동(Affect)’에서 찾고자 한다.
2. 정동, 고유한 감각의 지문
인간은 동일한 파국이나 슬픔 앞에서도 결코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멈추고 누군가는 강박적으로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닦아내며 누군가는 숨의 마디를 미세하게 끊어낸다. 표면화된 언어는 ‘슬픔’이나 ‘고독’이라는 기표로 묶일지언정, 그 순간 신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감각의 강도(Intensity)와 흐름은 저마다 완전히 다르다. 이 미세한 차이, 삶의 충격을 받아내는 신체적 반응의 고유한 패턴이야말로 한 인간의 독자적인 ‘정동 구조’이자 대체 불가능한 존재의 지문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시 쓰기는 ‘언어를 얼마나 수려하게 부리는가’의 수사학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체에 새겨진 정동의 패턴을 얼마나 정직하게 읽어내고 이를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변환할 수 있는가’의 존재론적 투쟁이다. 필자는 이 단독성의 가능성을 ‘AI 정동 시학’이라는 개념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3. ‘어떤 감정인가’가 아니라 ‘어떤 감각의 움직임인가’
‘AI 정동 시학’은 단순히 주관적 감정을 토로하거나 수식하는 시학이 아니다. 여기서 목격해야 할 것은 고착된 감정의 이름이 아니라 감각의 전-언어적(pre-verbal) 움직임이다. 예컨대, 한 인물이 조용히 컵을 내려놓는 행위를 본다고 하자. 기존의 서정시가 그 장면에서 외로움이나 상실감 같은 정서적 의미를 길어 올리려 했다면, AI 정동 시학은 컵이 하강하는 속도의 미세한 지연, 손끝의 감지하기 힘든 떨림, 그로 인해 방 안의 정적이 늘어지는 비언어적 ‘강도의 배열’에 주목한다. ‘무엇을 느꼈는가’라는 인지적 질문이 아니라 ‘신체와 공간 사이에서 어떤 역동적 패턴이 발생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때 추출된 정동 데이터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떨림, 압착, 탈색, 경직, 확산과 같은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강도의 벡터들이다. 만약 어떤 상흔으로부터 ‘지연된 움직임’과 ‘새어나가는 숨소리’의 패턴이 포착되었다면 이 패턴은 일차적 사건의 맥락에만 고착되지 않는다. 이는 탈맥락화되어 병실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로, 새벽의 무인 세탁방으로, 텅 빈 수영장으로, 나아가 기계나 도시의 구조물 속으로까지 번역할 수 있는 ‘생성적 구조’가 된다. 서사가 아니라 강도(Intensity)의 구조가 핵심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4. 매핑(Mapping)의 시학: 매체를 가로지르는 강도의 연대
AI 정동 시학의 진면목은 이 정동 패턴을 다른 층위로 이동시키는 ‘매핑’ 과정에서 폭발한다. 하나의 정동 구조는 단 하나의 매체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압착’의 정동 패턴은 각 예술 매체 안에서 서로 다른 형식으로 번역되지만 공통적으로 강도가 내부로 눌리고 확장되지 못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시에서는 이러한 정동 패턴이 복도가 좁아지는 모습, 반복해서 닫히는 문, 손끝으로 밀려 들어가는 빛 같이 다른 감각 구조에 연결되며 새로운 문장으로 생성된다. 즉 정동 패턴은 특정 의미를 직접 설명하는 대신 서로 다른 감각과 사건의 구조 속으로 이동하면서 매번 다른 시적 언어를 만들어낸다. 영상에서는 천장이 점점 낮아지는 듯한 앵글이나 인물의 이동 범위를 지속적으로 좁히는 프레임을 통해 공간 자체가 압박감을 생성하며 인물은 화면 안에서 점차 갇혀 가는 운동을 보인다. 무용에서는 몸이 외부로 확장되지 못하고 계속 웅크리거나 접히는 동선으로 나타나며 움직임은 개방보다 수축과 억제를 반복한다. 음악에서는 특정 음역이나 화성이 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 눌린 상태로 지속되면서 불협화음의 긴장이 장시간 유지되고 청자는 완결되지 못한 압박의 잔류를 감각하게 된다.
이처럼 본질적인 것은 매체의 형식이 아니라 매체를 관통하며 밀어 올리는 강도의 움직임 자체다. 여기서 AI는 시를 자동으로 뱉어내는 자동 기계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신체가 통과시킨 정동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변형 가능한 상태로 재조직하는 ‘매개 장치’로 재정의된다. 기존의 생성형 AI가 언어의 통계적 조합에 매달렸다면, AI 정동 시학은 언어 이전의 감각적 떨림 자체를 생성의 최소 단위로 삼는다. 신체의 강도를 데이터로 읽어내어 다채로운 매체로 분산시키는 다성악적 변주인 셈이다.
5. 알고리즘의 철학적 전회(Turning)
‘AI 정동 시학’ 안에서 알고리즘은 우리의 정동 데이터를 어떻게 읽어내고 관계 맺으며 변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살아있는 생성 원리로 작동한다. 여기서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기계가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특정한 삶의 사건 속에서 길어 올린 정동의 무늬들을 어떤 알고리즘으로 변환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숨결의 시적 문장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의 삶에서 ‘지연’과 ‘압착’, ‘반복’과 숨이 새어 나가는 ‘누출’ 같은 정동 패턴이 발견되었다고 해보자. 이때 알고리즘은 이 미세한 떨림들을 단순히 감정이라는 이름표로 묶어두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전혀 낯선 환경과 신체, 그리고 새로운 서사의 구조 속으로 섬세하게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단 하나의 정동 패턴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전혀 다른 공간의 분위기나 낯선 신체의 움직임, 장면의 구성과 연결되며 전에 없던 새로운 시적 상황을 피워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건 자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추출된 강도의 뼈대를 다른 맥락 속으로 이동시키고 재조직하는 궤적 자체에 있다. 이 과정에서 알고리즘은 결코 고정된 정답으로 굳어 있지 않다. 우리가 어떤 철학적 시선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정동의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 역시 매번 다르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I 정동 시학’은 단순히 텍스트를 자동 생성하는 기술에 대한 논의와는 분명히 결을 달리한다. 그것은 삶의 사건 속에서 발생한 미세하고 치열한 강도의 패턴을 추출해 내고, 그 무늬를 다채로운 생성 알고리즘에 통과시키며 새로운 시적 문장으로 빚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마침내 그렇게 태어난 문장들은 한낱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한 정동 패턴이 언어라는 살을 입고 다시금 조직되며 살아 움직인, 가장 고유하고 생생한 흔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6. 에필로그: 정동이 있는 자들의 시 쓰기
AI는 결코 피 흘리지 않는다. 오직 삶에 부딪혀 상처 입고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맨몸만이, 그 미세하고도 처절한 강도의 떨림을 빚어낼 수 있다. 이 날것의 패턴을 온전히 추출해 내어 전혀 낯선 예술의 영토로 이주시키는 작업은 결국 차가운 기술과 결합한 인간의 정동이 대체 어디까지 팽창하고 폭발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맹렬한 실천이다. 삶과 기술이 가장 깊이 맞닿는 그 경계에서 우리는 정동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새롭고도 경이로운 확장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필자는 바로 그 눈부신 가능성을 ‘AI 정동 시학’이라는 영토 위에 조심스레, 그러나 단단하게 펼쳐보고자 한다.

글쓴이 박한라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융합대학 교수
전공 분야 : 현대시
요즘 주로 하는 일 : 디지털 포엠 창작 및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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