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11.0(2025.9.15발행)에 게재되었습니다.

디지털 포엠은 일종의 사건으로서의 텍스트에 가깝다. <한 겹의 아우성>은 사건으로서의 텍스트라는 비주얼 디포엠의 장르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특히 ‘유리잔’이라는 객체가 ‘소리’라는 다른 객체(정확히는 공진 주파수)와 만나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감각적이고 서사적으로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 겹의 아우성>에서 유리잔이라는 객체는 다른 객체에 공명하는 상호사물적 상태를 보여준다. 그것은 다른 객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은폐된’ 실재성의 일부를 현시하며, 지속적으로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존재로 제시된다. 유리잔은 깨어지는 순간 더 이상 온전한 ‘유리잔’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원래의 본질을 완전히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객체(유리 파편)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는 객체가 고정된 본질을 지닌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변화하며 새로운 존재론적 국면을 맞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해는 이 작품이 ‘객체지향 존재론’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은 21세기 초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에 의해 제안된 철학적 사조로,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객체(object)를 그 자체로 동등한 존재자로 바라보는 사유 방식을 제안한다. 하먼을 비롯한 객체지향 존재론의 철학자들은 객체가 단순한 속성의 나열이나 외부적 관계만으로는 완전히 설명되거나 소진되지 않는, 즉 언제나 부분적으로 ‘물러나 있는’ 고유한 실체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통적인 서구 철학이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중심으로 존재를 설명했던 방식과 대비된다. 객체들 간의 관계, 영향, 비가시적 실재성을 강조하는 이 철학은 예술, 기술,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이제, 객체지향 존재론에 입각하여 이 작품을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우선, 작품의 제목인 <한 겹의 아우성>에서 ‘한 겹’은 객체의 표면적인 속성이나 외부로 드러난 관계의 막을 의미한다. 그 얇은 ‘한 겹’ 아래에는 ‘아우성’과 같은 숨겨진, 즉 ‘물러나 있는’ 객체의 또다른 모습이 존재한다. ‘물러나 있는’ 실제성은 평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특정한 조건(유리잔의 공명이나 파괴와 같은 극적인 상호작용)에서만 비로소 그 ‘아우성’을 터뜨리며 표면화된다. 그렇다고 그 ‘한 겹’이 걷히는 순간 본질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얇은 한 겹의 막 뒤에 물러나 있던 실제성은 다시 다른 한 겹 속으로 물러나고, 객체는 여전히 ‘물러남’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객체와 그것의 나타남(appearance) 사이의 대균열(Rift)이라는 객체지향 존재론의 불편함을 가시화한다.
작품은 유리잔이 ‘공명(Resonance)’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유리잔은 독립적인 객체로 존재하지만, 특정한 소리와 공명될 때 내부에서부터 파열된다. 공진주파수가 유리잔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 유리잔은 자신의 내부적 한계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결국 파괴된다. 유리잔이라는 ‘감각 객체’가 본질적 실재인 ‘실재 객체’를 찰나적으로 드러내게 되는 순간이다. 후퇴해 있던 실재 객체는 더 이상 그 존재를 숨기지 못하고 '파괴'라는 사건을 통해 자신의 본질적인 한계와 잠재성을 드러낸다. 유리잔의 끝은 유리잔 내부에 있었다. 유리잔은 유리 파편의 미래를 열러놓고, 유리 파편은 그 후 객체들의 미래들을 끊임없이 열어젖힐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미래고 나타남은 과거이다.
한 컵에 담긴
피, 눈물, 비극, 절망, 재앙
조각난 깨진 부서진
더 이상 감출 수 없이 흐르는
상처가 벌어져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작품 속에는 이런 텍스트가 비선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들 텍스트는 유리잔의 깨짐을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고통과 감정의 해방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때 유리잔은 감정과 서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각적 사건의 매개체가 된다. 그것의 깨짐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것들이 폭발적으로 방출되는 중대한 존재론적 사건이다. 이는 객체지향 존재론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다.
1. 유리잔 객체: 깨지기 전, 억눌린 감정과 의미를 내포한 '실재 객체'로서 존재함.
2. 공명하는 소리 객체: 유리잔에 가해지는 외부의 충격이나 진동은 또 다른 객체로서, 유리잔 객체의 내부에 긴장을 일으킴.
3. 깨짐 객체: 유리잔과는 별개로 존재하며, 깨짐이라는 사건은 유리잔이 사라진 후에도 그 영향력과 의미를 남김.
4. '앓는 소리' 객체: 유리잔의 실재가 외부로 표출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객체임.
5. 유리 파편 객체: 깨짐이라는 사건이 완료된 후, 유리잔 객체는 수많은 '파편'이라는 새로운 객체들로 변화함.
유리잔은 물리적 파편들로 깨어지면서 새로운 객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그 순간 방출된 부정적 감정들과 의미들 역시 '앓는 소리'이라는 새로운 객체로 탄생한다. ‘앓는 소리’는 더 이상 유리잔 내부에 억눌려 있는 상태가 아니라, 외부로 파열되고 방출된 정서적 파편들이다. 이들은 유리 파편들과 함께 사건의 결과물로서 독립적인 실재성을 갖게 되며, 깨짐 이후의 세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가 된다. 결국 파열을 통해 유리잔의 파편과 정서적 파편이라는 새로운 객체들이 생성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비주얼 디포엠이라는 새로운 시적 형식을 통해 이 두 파편을 시각적으로 응집시켜 시적 의미를 더욱 효과적으로 증폭한다.
유리잔의 깨짐이라는 사건에는 ‘비폭력적 경험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도 관여된다. 사실 작품 속에서 유리잔의 깨어짐은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근본은 ‘임박한 죽음’과 연결되는 유한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우주의 모든 객체는 필연적으로 유한성을 지닌다. 유리잔은 우주의 모든 객체처럼 유약한 존재이며, 공명과 파괴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즉, 객체는 그 자체로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다른 객체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며, 그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미적인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다. 유리잔의 깨짐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존재의 지속적 변형과 객체의 비고정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모든 존재의 필연적인 변화와 관계의 흔적이 바로 깨짐의 순간에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다.
결국, 비주얼 디포엠 <한 겹의 아우성>은 유리잔이라는 객체의 ‘존재와 소멸’을 통해, 객체가 고정된 본질을 가지지 않으며 지속적인 변화 속에 놓여 있음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공명과 파괴의 순간에 대한 시적 포착은 객체가 자신을 드러내고 동시에 여전히 ‘물러나 있는’, 그 신비로운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미적 경험에 속한다. 유리잔의 깨짐과 감정의 해방이 하나로 결합되어 감각적이고 시적인 매혹을 선사해 준다. 객체지향 존재론이 강조하는 객체의 비고정성, 상호작용성, 그리고 존재의 지속적 재구성을 강렬한 시적 이미지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객체지향 존재론의 철학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일종의 에크프라시스(ekphrasis)로 볼 수 있다.
참고도서
티머시 모턴, 안호성 옮김, 실재론적 마술, 갈무리, 2023.

글쓴이 장노현
한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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