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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인터뷰

<나는 수천 마리처럼 이동했다> 박유하 시인 인터뷰

 

* 이 글은 하이퍼 레터 3.0에 개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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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디지털 포엠을 창작하게 된 배경이 있으신가요?

A1. 요즘 디지털 층위에서 소비하는 글은 쉽고, 간단하지만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는 간단하고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 특징을 갖고 있음에도, 출판물만으로는 글의 난해성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시도하는 디지털 포엠은 시를 감상할 때 시너지가 되는 변형 사진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시적인 특징을 문자뿐만 아니라 이미지로도 확장 시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점점 출판물의 영역은 작아지고 디지털 영역은 확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출판물만의 매력은 있지만, 아직 디지털 영역에 맞는 갈래가 활성화되지 않는 지금, 저도 여러 가지 시도해보면서 이 갈래를 확장해가고 싶습니다.

 

 

Q2. 디지털 포엠을 창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2. 디지털 포엠 갈래 이론을 창시한 장노현 교수님께서는 문자를 역동적으로 사용하기, 멀티미디어 전략, 인터랙션 전략, 하이퍼텍스트 전략 등의 메뉴얼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러한 특징들을 활용해서 인스타에 접목해 본 결과, 디지털 포엠 작업에서는 대중들의 이목을 멈출 수 있는 매력적인 이미지, 사유를 자극하는 짧은 글,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호흡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디지털 포엠은 디지털 층위의 장단점을 같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창이 빠르게 흘러가면서 잠시 멈추게 하는 힘이란 매력적인 이미지나 호흡이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글을 같이 소유할 때 문학이 작가 주체의 결과물이 아닌 연대로서의 문학이 될 수 있지요. 실제로 제 시를 읽고 연계시를 써주신 독자도 있었습니다.

 

 

Q3. 창작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해설 부탁드립니다.

A3. 이번에 연계시가 나온 작품인 <번식력>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디지털 포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창작자와 독자의 소통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번식력은 마음의 번식을 다룬 시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번식하는 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어떤 마음일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번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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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시> 시 아래의 숫자는 필사 시간을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예) 23:54, 02번째 요일, 22일, 8월 23일)

 

 

<신의 반지하>

 

 

 

 

오래 꽂혀 있는 책은 중력이 아닌 운명이 그 자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한 책을 들어 올리면 자리의 따뜻하고 쓸쓸한

내장이 따라 올라온다

시큼하고 깊은 종이 냄새

 

책 한 마리를 끌고 가면서

나는 따뜻하고 쓸쓸한 내장의 울렁이는 속을 익힌

적이 있다

 

따뜻하고 쓸쓸한 내장에게 내어 줄 살이 있을 때

신이 이토록 사랑한 자리는 늘 출렁거린다

 

 

* * * Note * * *

 

 

한자리에 오래 있으면 그 자리가 나를 소화하고 있는

낌이 든다.

 

나에게 문득 방 냄새가 풍길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내가 머물렀던 자리의 위장이 함께 따라와

여전히 내가 소화되고 있는 것같이 울렁거렸다.

 

방이 소화하는 나를 이끌고 저녁 거리를 걸으며

방과 나를 이어 준 신을 상상한 적이 있다.

 

신의 의도는 우연처럼 보인다.

이해하지 못하면 믿어야겠지.

 

나의 방은 반지하였다.

 

끝내 방이 소화하지 못한 나는 유물처럼 남아

땅 위로 지나가는 모든 것을 우러러봐야 했다.

이쪽에서 보는 저쪽은 모두 찬란했던 적이 있었다.

 

 

Q4.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창작을 해가실지 알려 주세요.

A4. 아직 디지털 포엠은 실험 단계에 있습니다. 아마 이 장르가 태어난 이후 실험은 계속 이어지겠지요. 저는 큰 그림을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포엠을 통해 사진과 글의 연계성에 대해 실험해보고 있지만, 앞으로 사진뿐만 아니라 10~30초 초단편영화와 시와의 연계성까지 도전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