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하이퍼 레터 3.0에 개재되었습니다.
Q1. 디지털 포엠을 제작할 때 주안점으로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1. (디지털 포엠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아날로그 포엠을 뛰어넘는 디지털 포엠만의 창작 포인트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디지털 포엠 표현 방식에 대해 무지했던지라 혼자서 참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결국 교수님과의 상담과 긴 고민 끝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요소는 멀티미디어의 사용 유무와 다양한 미디어의 유동 가능성, 감상자와의 직접적 상호작용성’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 부분들을 살리며 디지털 포엠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것들이 아날로그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디지털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저는 디지털 포엠의 진정한 멀티미디어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작품 제작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드니 ‘속으로는 번잡하고 겉으로는 단조로웠던 이전의 아날로그 포엠이 디지털 포엠으로써 생명력을 갖는 것은 시간문제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이나 사진, 사운드가 텍스트의 보조 도구가 아닌 그들 자체로도 작품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작자로서 고려해야 할 가장 큰 부분이었습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텍스트를 이용한 실험도 많이 했는데, 텍스트를 이미지화해서 아예 모양을 변형시키거나 폰트를 바꾸고 텍스트에 움직임을 추가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했어요. 그렇게 글자 하나에도 저의 작품 메시지를 눌러 담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이전 시의 형태, 아날로그 포엠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가 작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포엠의 멀티미디어화’로 통했습니다.
Q2. 작업 툴과 방식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2. 작품을 만들면서 참 다양한 작업 툴을 썼는데요. 먼저 영상이나 사진, 소리를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Vegas Pro’라는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디지털 비주얼 포엠 <아들의 몸에는 아버지가 산다> 작업 창 사진
이 사진은 디지털 비주얼 포엠 <아들의 몸에는 아버지가 산다>의 편집 창인데요.
초보자 수준의 편집 창이긴 하지만 텍스트 소스, 비디오(사진) 소스, 사운드 소스가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각 오브젝트에는 필요에 따라 애니메이션도 주고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감소시키기도 했어요.
제가 시를 디지털적으로 다룬 첫 작품은 ‘<아마존 수족관> 프로젝트’인데요. 최승호 시인의 <아마존 수족관>이라는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에는 정말 많은 작업 툴이 사용되었어요. 먼저 앞서 말씀드린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영상들을 유튜브에 업로드해 유튜브 자체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을 작품의 주요 작업 툴로 사용했습니다. 유튜브 자막 기능과 최종 화면 추가 기능, 동영상 세부정보 작성 기능, 재생목록 기능이 사용된 점이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이에요.
이렇게 시의 전문을 토막 내어 영상 속 자막으로 추가했습니다. 또 최종 화면 기능을 통해 영상 말미에 감상자가 시어를 선택해 우연적이고 능동적인 시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디지털 포엠 프로젝트 <아마존 수족관> 작업 창 사진(유튜브 최종 화면 추가 작업)
이를 통해 감상자가 시의 분위기나 시어의 이미지를 조금 더 집중해서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외에도 유튜브의 재생목록 기능을 통해 여러 영상들을 하나로 묶어 이들이 한 작품이라는 가시성을 높였어요.
‘<아마존 수족관> 프로젝트’에는 감상 프로젝트도 함께 구성되어있는데 그건 블록 코딩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Scratch)’를 사용해 제작했습니다.
디카시 작업을 할 때는 이전처럼 영상 포맷 기반의 무거운 작업 방식을 택하면 안 될 것 같아 GIF 파일로 작업을 했는데요. GIF 편집 사이트를 이용해 텍스트를 배치하고 글자색이나 글자 위치를 이동하는 등 최대한 가벼운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그림으로 꼬아서 아이콘으로 만들어 창작자를 표시했어요.
Q3. 작품 창작 배경과 해석 부탁드립니다.
Q3. 먼저 디지털 비주얼 포엠 <아들의 몸에는 아버지가 산다>는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오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아주 기이한 관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저는 이 기이한 관습을 ‘윗대에서 내려오는 원하지 않는 무언가의 세습’에서 발생한 현상이라 설정했습니다. 여기에서 세습의 형태는 신분, 직업, 재산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요. 엄청난 금액의 빚일 수도 있고 가훈, 인간관계, 계약, 트라우마, 질환 등 윗대에서 내려온 부정적인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에서 각 아들들은 이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모든 것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각자의 아버지를 죽입니다. 친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친할아버지를, 아들은 아버지를요. 하지만 이 원치 않는 세습은 몇 대를 이어도 해소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아버지를 토막 내어 담담하게 죽인 아들은 아버지의 심장을 움켜쥐는데요, 아들은 이 순간 자신의 아버지를 완벽히 죽임으로써 윗대의 관습을 온전히 답습하게 됩니다. 결국 혁신을 위해 저지른 행동조차 윗대와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원치 않던 세습의 원초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죠. ‘피는 못 속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도 있고요. 이처럼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닮습니다. ‘아들의 몸에는 아버지가 산다’는 제목이 이를 투명하게 대변하고 있죠.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아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작품의 내용이 조금 암울하고 엔딩도 그리 쾌활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분위기나 텍스트의 시각적 활용 등을 보고 느낀 감상자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작품이 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두 번째로 디지털 포엠 프로젝트 ‘<아마존 수족관>프로젝트’는 ‘시도 재구성될 수 있지 않을까?’, ‘작품의 분위기나 시어가 주는 이미지를 다른 감각(시청각)으로 색다르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텍스트는 절대적으로 영원할 수도, 태초의 순수 상태로만 남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흔히들 말하는 텍스트의 ‘초월번역’으로 이 생각을 굳힐 수 있었죠. 텍스트로 이루어진 문학 소설이나 시도 똑같았어요. 언제나 시는 갖은 방법으로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승호 시인의 <아마존 수족관>이라는 작품을 특정 시어들을 잡아 분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 전문에서 추출한 시어들이 영상들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나름 개성이 강하면서 시적으로 굵직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 중심 시어들을 뽑았어요. 그리고 그 시어에 맞는 분위기의 영상, 이미지, 효과음 등을 나름대로 이어붙였죠. 그러니까 제가 생각했던 시의 재구성이 실현되었어요.
감상 프로젝트는 기존 작품에서 한 발 더 나간 작업이었는데 당시 수업에서 ‘인터렉티브 아트’에 대해서 배우고 있을 때라 저는 감상자를 작품 속에 더 깊숙이 끌고 오고 싶었어요. 그 결과 자신의 감상을 이미지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감상 프로젝트로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초보적인 수준이기도 하고 개념적인 부분이 강하긴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디카시 <나의 이진법 메이트>와 <비둘기와 여물통>(2/2)가 있는데 <나의 이진법 메이트>에는 제가 게임 ‘동물의 숲’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직접 찍은 영상이 소스로 사용되었어요. 작품을 잘 보면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나오는 효과들과 일맥상통한 효과가 텍스트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캐릭터가 촛불을 붊과 동시에 나온 연기 효과처럼 ‘후’ 글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폭죽을 터뜨릴 때 ‘펑!’ 글자가 터진 것처럼 나타났다가 컨페티와 함께 화면에서 없어집니다. 이 작품은 제 생일날 섬 주민들이 자신의 집에 초대해 함께 모여서 축하해주던 게 기억에 남아 <나의 이진법 메이트>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디카시예요. 이 영상 속 순간은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한낱 데이터 조각에게 진심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디카시 <비둘기와 여물통>(2/2)는 두 개의 시가 한 작품인데요. (1/2) 시의 제목은 <㈅ㅣ둘7i와 ㉧ㅕ물통>이에요. 제목의 표기 글자를 숫자, 기호, 영자 등에서 따와 암호화된 것처럼 나타냈습니다. 이 제목의 의도는 내용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요. <㈅ㅣ둘7i와 ㉧ㅕ물통>의 전문은 ‘구구’ 소리와 기호, 숫자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 - - - * , - *’기호는 숫자 ‘9’를 뜻하는 모스부호예요. 결국 이 시의 전문은 ‘구구(99)’라는 말로만 쓰인 거죠. 이 암호화된 전문은 그다음 작품인 (2/2) 시 <비둘기와 여물통>을 통해 궁금증이 해소됩니다.
<비둘기와 여물통>은 전시 <㈅ㅣ둘7i와 ㉧ㅕ물통>에 대한 해석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상자는 ‘소’의 여물통에 들어가 정신없이 여물을 쪼아 먹는 비둘기의 모습이 이제야 이해됩니다. 며칠을 굶주린 비둘기가 배를 채우기 위해 소의 밥을 훔쳐 먹는 비둘기라는 것을 알고 한편으로는 짠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해석은 오로지 비둘기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비둘기와 여물통>은 비둘기의 입장에서 쓰였고 비둘기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ㅣ둘7i와 ㉧ㅕ물통>에서 여물통 주인인 ‘소’는 자신의 밥통을 뺏어 먹는 비둘기를 곱게 보지 않을 거예요. 그저 ‘구구’ 소리를 내며 여물을 쪼는 밥통 도둑으로 볼 겁니다. 같은 상황을 소와 비둘기 두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Q4. 마지막으로 디지털 포엠 창작 후기 부탁드립니다.
A4. 디지털 포엠을 창작하면서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었어요. ‘이게 맞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같은 질문들이요. 항상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빼곡히 차 있었어요. 시를 쓰겠다고 종이와 펜을 드는 게 아니라 노트북 전원을 켜고 마우스를 딸깍대며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가 떠 있는 모니터를 몇 시간 동안 쳐다볼 때면 정말 이게 시를 쓰는 것인지, 무언가를 만들고는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나는 뭘 만들고 있는 건가 싶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예술에 정답은 없다’라는 공식을 들이밀며 디지털 포엠을 만들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디지털 포엠이라는 장르의 작품을 만들면서 저는 왜 이런 의문들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제 자신에게 있었어요. 그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문학은, 시는 종이에 인쇄된 책의 형태로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저의 얄팍한 고정관념 그 하나가 문제였죠. 텍스트의 형태를 요리조리 바꾸면서도 의구심을 가졌던 것은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시의 형태와는 너무나도 달라서였어요.
‘시’라는 문학 장르를 떠올렸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도서관에서 흔히 보이는 책 형태의 인쇄된 형태를 생각할 거예요. 인터넷에 밝아 e-book 형태의 시를 떠올려도 책의 인쇄 형식을 그대로 베껴 데이터로 옮겨놓은 전자‘책’에 그칠 뿐이에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 세기 전 사람들이 사용하던 방식 안에 꼼짝없이 갇혀 나오지 않고 있어요. 어쩌면 익숙한 것, ‘전통성’이 주는 안도감이 포근해서 굳이 그곳에서 나올 필요성조차 못 느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존 근대 시는 혼자서만 복잡한 것 같아요. 텍스트 하나로 모든 것을 승부 보려 하거든요. 그래서 작법부터 구성, 내용까지 모두 꼬아버려요. 날이 갈수록 시는 하려던 얘기도 못 하고 텍스트적 신선함만 갈구하고 있어요. 디지털이라는 신문명이 나온 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말이에요. 덕분에 휘황찬란한 정지된 텍스트들만 늘어나게 됐습니다.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엄청난 신선함을 두고 왜 오래된 것에서 신선함을 찾으려 하는 걸까요?
디지털 포엠은 미래 시대 포엠의 방향성을 아주 간결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접근성은 좋지 못합니다. 적어도 훗날에는 정갈하게 정형화된 과거의 포엠 형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할 주요인이 될지도 모르는 장르인데 말이에요.
현대의 세상은 근대 시의 비상을 외치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인쇄된 시집을 찍어내면서요. 그 누구도 디지털 포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단 취급을 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영상이나 움직이는 텍스트들이 ‘시’냐면서요.
하지만 그런 디지털 포엠을 창작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그 누구도 저의 창작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저의 창작 방식은 곧 작품의 법칙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작품성을 가진 기법으로써 수용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정해진 규칙을 달달 외워 답습할 이유는 없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창작의 고통도 뒤따르긴 했지만, 저의 창작 기법이 부정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디지털 포엠을 계속해나갈 원동력은 충분했습니다.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창작을 하며 디지털 포엠이 세간에 많이 알려져서 디지털 포엠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도 다양한 작업들이 왕성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이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또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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